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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살림살이 이래요'… 박씨, 고씨, 김씨의 이야기


'요즘 살림살이 이래요'… 박씨, 고씨, 김씨의 이야기

아시아경제 | 박연미 | 입력 2011.06.17 11:33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지난 16일 저녁. 생후 9개월된 아기를 둔 주부 박현영(31)씨는 대형마트 분유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아기가 먹는 P사 2단계 제품은 두 통만 사도 5만7800원이에요. 수박 한 통이랑 참외 5개 사고, 설탕하고 소면, 당근 한 뿌리 샀더니 10만 9440원이네요. 수입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왜 이렇게 오르는건지. 참, 올 여름부턴 전기세랑 공공요금도 줄줄이 오른다면서요? 휴 …."

#신림동에서 작은 고시식당을 하는 고재훈(58)씨도 요즘 걱정이 많다. "백반 값을 1000원씩 올렸더니 손님이 확 줄었어요.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돼지고기며 하루 세 판 씩은 쓰는 계란 값이 보통 올랐어야지요. 다들 주머니 사정이 뻔하니 월식(月食) 구폰 끊은 학생들 말고는 손님 드나드는 게 전 같지 않네요. 월세 날은 다가오고, 답답합니다."

#잠실 신축단지에 살던 직장인 김재훈(39)씨는 지난 봄 이사하던 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입맛이 씁쓸하다. 전세 계약 기간이 8개월이나 남았지만 집 주인이 '5000만원을 올려주든지 이사 비용을 쳐 1000만원을 얹어 줄테니 나가달라'고 했다. 결국 초등학생 딸 아이의 개학을 앞두고 울며 겨자먹기로 이사를 했지만, 집은 전보다 훨씬 낡고 좁아졌다.

살림살이가 팍팍하다는 박씨와 고씨, 김씨는 요사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데 웬일인지 국민들의 지갑은 더 얇아졌다. 수출은 GDP의 절반을 웃돌 만큼 잘 나가도 민간소비는 영 신통치 않다. TV에선 5월에만 일자리가 35만개나 늘었다던데 주변엔 대졸 백수가 넘쳐난다. 오르는 물가를 금리로 잡는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하다. 당장 집 살 때 얻은 대출 이자는 어쩌지.

계절은 어느덧 여름, 하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렇게 한겨울이다. 지표와 체감경기 사이엔 아직도 거리가 멀다.

◆수출 '아랫목' 내수 '윗목'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 1분기 실질 GDP는 전기보다 1.3%, 1년 전보다 4.2% 성장했다. 건설업(전기대비 -6.1%)과 농림어업(-4.5%)의 부진 속에서도 제조업은 3.1%, 서비스업은 1.2% 생산이 늘었다.

견조한 성장을 이끈 건 수출이다. 1분기 재화와 서비스 수출은 139조 2163억원(계절조정 실질 기준)으로 사상 처음 가계의 민간소비(137조 886억원) 규모를 앞질렀다.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2.2%로 절반을 웃돈다.

통계를 보면 수출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지난 1970년 1분기(6286억원) 이후 올해까지 41년 동안 220배 급증했다. 당시 6300억원 남짓이던 수출은 서울 올림픽을 치른 1988년 1분기(13조331억원)에 정부 지출 규모(12조 9755억원)를 추월했다. 이어 지난 2000년 3분기(55조 7449억원)에는 총 투자(54조 2720억원) 금액을 넘어섰다.

반면 민간소비 증가폭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했다. 1970년 1분기 12조 5566억원이던 민간소비 규모는 같은 기간 10배 늘어나는 데 그쳐 대조를 이룬다. 외관상 몸집은 커졌지만, 속이 꽉 찬 성장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GDP 늘어도 지갑은 얇아져

=이런 속사정은 지난 1분기 지표에도 드러났다. GDP 증가세는 이어져도 교역 조건 악화로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분기보다 0.1% 줄었다. 전분기대비 GNI가 줄어든 건 2009년 1분기(-0.2%) 이후 2년 만이다. 실질 GNI는 국민들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실질구매력을 보여준다. 이 지표가 줄었다는 건 그만큼 소비 여력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 물가는 4%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 심리를 꽁꽁 얼리는 악재다. 정부는 내수활성화 대책을 내놓겠다며 떠들썩하게 장차관 국정토론회까지 준비했지만, 묘안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그럼 그 많은 경제 성장의 열매는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국민처분가능소득 가운데 각 경제 주체가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답을 구할 수 있다. 지난 1975년 국민처분가능소득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13.8%까지 늘었다. 36년 사이 최대치다. 대신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종전 81.4%에서 사상 최저치인 63.2%로 추락했다. 기업, 그 가운데서도 정부 지원으로 수출에 힘 써 성장한 대기업들이 큰 혜택을 본 셈이다.

전후(戰後) 한국 경제를 '수출 드라이브'로 일으켜세웠지만, 골고루 균형 잡힌 'S라인' 경제 구조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수출과 내수, 가계와 기업이 같은 지표를 다른 온도로 느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