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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한진중공업은 왜 싸우고 있는가?




이 글은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위해 만든 자료집에 올린 글입니다.


2011년 1월 6일(목) 새벽 5시 40분께 1986년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되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홀로 35m 높이의 한진중공업 85호 지브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에 돌입한 85호 크레인은 2003년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 중단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당시 노조 지회장이던 故(고) 김주익 전 지회장이 129일 동안 농성을 하다 스스로 목을 매고 자결한 크레인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편지글에서 ‘지난(해)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잘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다“며 ”그런데 또 400명을 자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명이 넘게 잘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 된 시간동안 일어난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런 한진중공업 상황은 2003년 85호 크레인 위에서 김주익 전 지회장이 자결한 상황과도 비슷하다. 당시 김주익 전 지회장은 유서에서 "1년 당기 순이익의 1.5배·2.5배를 주주들에게 배상하는 경영진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50억 원 정도의 배상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천5백억 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이러한 회사에서 강요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이때도 한진중공업은 전년도 매출목표를 초과해 수백억 원의 흑자를 냈고 노조 탄압이 극심했던 2003년에도 2월말을 기준으로 1년 치 목표량이었던 9억 달러를 훨씬 초과한 12억 달러 어치의 수주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사쪽은 임금단체협상에서 계속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노조에 적극적인 조합원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교육명령을 내리고 무급휴가 사용을 강요하는 등 노조탄압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다.

또 노조간부 구속, 징계, 손해배상청구·가압류, 교섭회피까지 악랄한 노조탄압정책으로도 사회적 문제까지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 김주익 지회장은 사측과 임단협이 해결될 때까지 129일동안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진행해오다 자결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했었다. 고 김주익 전 지회장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고 이런 사실을 잘 아는 김진숙 지도위원은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번민이 컸다”고 했다. 김 지도위원은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기 또 한 마리의 파리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한진중공업에서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 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라며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을 지킬 것입니다’라고 85호 크레인 농성돌입 심정을 밝혔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1981년 7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직업훈련원에서 3개월동안 용접교육을 받고 1981년 10월 1일 대한조선공사에 정식 입사해 선대조립과에서 용접을 했다. 김 지도위원은 86년 7월 노조대의원 활동을 하다가 ‘명예실추, 상사명령 불복종’등의 이유로 해고된 후 25년동안 해고 상태다. 김 지도위원은 해고된 이후에도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 왔으며, 현재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2월 15일 오전, 최초 해고대상자인 400명 중 희망퇴직을 신청한 228명이 제외된 172명에 대해 해고를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