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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문득,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기륭전자 농성현장에 계신 분의 문자였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한 번 꼭 들려 주십시오."
짧지만 아주 큰 울림을 마음 속에 전달하는 호소였습니다.

이제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는 안양군포의왕 비정규직센터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방문하기에는 조금 벅찼기때문에 운영위원들끼리 기륭전자 농상장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24일 일요일 저녁, 어렵사리 시간을 낸 운영위원 4명과 일반회원 1명이 함께 기륭전자 농성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기륭전자는 2005년, 비정규직에 대한 대규모 해고에 맞서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투쟁에 들어가면서 오늘까지 5년여를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도 있었고, 한 조합원이 지병으로 돌아가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륭의 승리가 비정규직의 승리라고 굳게 믿고 다시, 세번째 단식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기륭전자문제의 원인은 바로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2005년 당시, 기륭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 300명 중 290명이 비정규직인 회사였습니다. 더구나 회사측은 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3개월, 6개월 계약을 강요하여 고용불안이 심각한 곳이었습니다. 월급은 64만원에, 한달동안 잔업 철야를 해야 간신히 10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으며 한 달에 60여명이 해고되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이런 저임금과 불법파견, 비정규직문제에 견디다 못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에서 노조를 만들어 당시 조합원이 200명이 넘었다고 하니,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당했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때 구로에서 일한 적이 있으니 기륭전자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 장담하는 한 운영위원님의 장담을 믿고 승용차로 기륭전자를 향해 출발했으나.. 결국은 기륭전자를 코 앞에 두고 그 주변을 30여분 헤메다가 어렵사리 도착하니 벌써 어둠이 내렸습니다.

이미 부서진 구 기륭전자 터 넘어로는 불빛이 찬란한 아파트 단지가 보였고 단식농성과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외침이 담긴 현수막들 사이로 보이는 달빛이 왠지 처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철거를 위해 들어온 포크레인이 멈춰 있습니다.
농성장과 공장 입구 바로 앞에 멈춰 비정규직 철폐, 인간다운 권리를 호소하는 현수막과 소원지를 둘러싼 포크레인은 이제 철거를 위한 도구가 아닌 노동자의 입장을 울부짖는 용으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용 머리 처럼 보이시나요?
은박 깔개를 이용한 멋진 용의 머리였습니다.

조합원들이 단식에 들어간지 12일, 금속노조 부위원장인 김형우 부위원장도 동조단식 3일째를 맞이하는 날이었습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은 인원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날은 독립영화 상영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7시가 넘어 짧은 독립영화를 옹기종기 앉아 보고 있는 동안 사람들 사이로는 쵸코파이와 따뜻한 커피, 율무차가 돌았습니다.



힘들게 싸우는 분들에게 빈 손으로 가서 오히려 작은 허기를 채워줄 쵸코파이와 추운 늦가을 밤에 온기를 나눠주는 차 한잔을 들고 잠시 부끄러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사회 곳곳에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작은 단체가 다 채워줄 수 없겠지만 그날 밤 내 두 손에 들고 있던 온정만킁이라도 사람들 마음과 삶 속에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찾아간 방문이라 격려도, 도움도 제대로 되지 못했지만 이렇게 싸우는 분들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주 커다란 것이 아니더라도 한자락의 온기와 같은 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싸우는 농성장에는 지난 2008년 촛불집회부터 함께한 많은 이들의 흔적이 빛바랜 손구호와 현수막으로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
그 대상은 바로 우리 사회의 모순과 그릇된 권력입니다.

걸어가고 헤쳐가는 길은 각자 다르더라도 모두 만나 민중의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그 광장은 하나일 것입니다.

이제 제법 바람도 차고 조금 있으면 빨갛게 노랗게 나뭇잎들이 물들겠지요.

기륭 노동자들에게 이번 가을과 겨울이 또다시 투쟁 현장에서 맞이하는 6번째 가을, 겨울이 아니라 일터에서 맞이하는 5년만의 가을, 겨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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