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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2차희망버스참가기]쪽팔리기 싫어 탄 희망버스에서 '희망을'







안양 희망버스 참가자의 참가기입니다.





쪽팔리기 싫어 탄 희망버스에서 '희망을'
[희망버스 참가기] 그녀의 192일째 투쟁이 저물어 갑니다


군포시민


누군가 크레인 위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시위 중이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그런 일이 한두번이었어야죠. 그러다 사단은 트위터에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트위터를 켜면 사람들이 자꾸 누군가의 글을 알티(Retweet)하는데 처음에는 그 양반 프로필 사진에 애를 안고 있기에 "꽤나 열혈 아줌마 좌파인가"했지 뭡니까.
 
네, 그 양반이 바로 김진숙 지도위원입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주인공이 일곱달 넘게 크레인에서 그러고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느냔 말이죠. 용서하십시오. 여튼, 한발 늦게 그 엄청난 사태를 깨닫고서는 저도 열혈 알티군단으로 활동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한진중공업의 진실과 김진숙의 투쟁을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퍼날랐습니다. 그 와중에 2차 희망버스 일정이 발표되니, 어느덧 제 친구들은 제가 당연히 그 버스에 오르는 걸로 짐작들 하지 뭡니까. 결국, 저는 "쪽팔리기 싫어서" 희망버스에 올랐습니다.

여행은 아주 즐거웠습니다. 희망버스 안양출발단.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모두 유쾌하고 친절했습니다. 물론 민노총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저 같은 개인참가자에 비해 딱히 과격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장맛비를 뚫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철의 노동자'를 부를 땐 괜시리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쪽팔리기 싫어서 떠난 여행이 어쩌면 자랑스러운 투쟁담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죠.



부산역에 내리니, 쿵짝쿵짝 스카펑크가 울려퍼지고 사람들은 빗속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시위는 커녕 Rock Festival에 가까운 분위기였죠. 우리 안양지구 참가단은 무대를 향해 글씨판을 들어올렸습니다. 김진숙 누님에게 고백하는 사랑의 글귀! 누군가 밤새 손으로 색종이를 찢어 만들었다는데 과연 그 정성이 통해서인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죄다 우리의 글씨판 퍼포먼스를 촬영했습니다.
 



 문화제가 끝나자 주춤거리는 경찰저지선을 뚫고 영도로 향했습니다. 그 넓은 도로를 차지하고 비정규직 철폐와 김진숙의 이름을 외치며 행진하는 순간, 이제 즐거움과 우쭐함을 넘어 자신감까지 붙었습니다. 한마디로, '오늘 데모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85호 크레인 아래까지 달려가 진숙 누님을 향해 멋지게 손을 흔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퍽이나 순진했던 그 믿음은 영도다리에서 주춤거리더니 목적지를 약 1km남긴 곳에서 저지당하고 말았습니다. 망할 놈의 명박산성이 거기에 도 있었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모두 아시는 대로입니다. 우리돈으로 봉급받는 경찰에게, 우리돈으로 구입한 곤봉과 방패와 물대포와 최루액에 흠씬 두들겨 맞으며 단 1미터도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부산경찰은 국회의원, 시민, 장애, 비장애, 심지어 어른과 아이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 연행과 몽둥이질, 최루액을 퍼부으며 몸소 차별금지를 실천했습니다. 철벽은 지들이 쌓고 우리에게 도로를 점령했다고 우기는 경찰을 향해 "평화행진 보장하라"고 외쳐봤지만, 그거야 말로 조남호 귀에 대고 "정리해고 철회하라" 주장하는 격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순간, 그 처참한 새벽의 한 가운데로 힘찬 목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휴대폰과 엠프를 거쳐 영도 하늘 아래를 꽉 채운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소리. "여러분, 우리는 기필코 만날 것입니다. 꼭 만나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직녀, 단 한순간 마주한 적 없으나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그리운 그녀가 젖먹던 힘을 짜내 외친 연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밤새, 아니 희망버스 참가단이 돌아갈 때까지 트위터를 통해 전력으로 우리를 응원했습니다. 천리 밖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만 두드리는 게 부끄러워 부산까지 달려갔었는데, 그곳에서도 희망을 베푸는 이는 김진숙이었고 수혜자는 우리였습니다.

그렇게 피곤과 희망을 오가는 동안 아침이 밝았습니다. 최루액에 쫓기다 원래의 대오에서 떨어져 나갔던 저는 어느 골목에선가 똥싸는 자세로 쪽잠을 청하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안양지구 식구들과 재회했습니다. 그리고 길 위에서 나눠주는 국밥을 훌훌 들이마시고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아뿔싸, 경찰의 차벽 뒤로 한진중공업 건물이 보였습니다.
 
지난밤 경찰이 쏘아댄 라이트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건물입니다.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국가는 우리의 세금을 뜯어 무장시킨 공권력을 고스란히 자본에게 헌납했고, 지난밤 철벽 뒤 어디쯤에선가 조남호와 그 일당들은 경찰의 탈을 쓴 한진 경호원들이 우릴 두들겨 패는 모습을 재밌게 구경했겠지요. 170명의 인생을 정리해고한 뒤 샴페인을 터뜨린 것처럼 말입니다. 이 따위 세상에 희망이란 얼마나 지랄 맞은 착각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겨우 하룻밤 길바닥에서 보낸 주제에 그런 투정을 했던 것이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름 이번 여행을 정리해 봤습니다. 아주 잠깐 비에 젖었고, 아주 잠깐 길바닥에서 졸았으며, 아주 잠깐 배가 고팠고, 아주 잠깐 경찰에 쫓기며 왠지 모를 고립감까지 느꼈던 여행, 그 와중에 가장 갈급한 것은 물도 음식도 아닌 전화기 배터리였고 계속 트위터와 문자와 페이스북으로 현장 상황을 중계하는 저에게 친구들이 보내주는 응원의 답글은 천군만마와 같았습니다.
 
어쩌면 우린 영도에서 아주 잠깐, 정말 어설프게나마 김진숙의 고공투쟁을 경험했는지도 모릅니다. 감히 그녀 앞에서 명함도 못내밀 그밤의 경험때문에라도 우린 보이지 않는 희망을 희망해야겠지요. 믿기지 않지만, 김진숙 누님이 말씀하시길 희망은 우리에게 있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또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겠죠. 이 글을 쓰는 동안, 그녀의 192일째 투쟁도 저물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