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달려갈 때마다 사람들이 퉁퉁 튕겨져 나왔다” | |
시위현장 덮친 대포차에 유성기업 노조원 13명 부상 테러 주인공은 불구속, 합법파업 노동자들은 구속 | |
박수진 기자 | |
‘퍽, 퍽, 퍽, 퍽’ 소리가 났다.
5월19일 오전 1시20분께. 박아무개(36)씨가 뒤돌아봤다. 회색 카니발 차량 한 대가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박씨에게로 돌진했다. 부딪히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1분쯤 지났을까. 귀가 많이 아팠다.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동료들이 ‘정신을 놓으면 안된다’ ‘119를 불러라’ 말하는 소리들이 희미하게 들렸다. 죽는 건 아닌지 무서웠다. 인도로 올라오는 턱이 꽤 높았는데 차량이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안에 있는 ㄷ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귀를 꿰매는 수술을 했다. 의사는 “조직이 죽어 재생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부어 움직일 수 없고, 옆머리도 꿰맸다. 무릎·어깨에 두루 타박상을 입었다.
퍽, 퍽, 퍽 하더니 13명 쓰러져 박씨는 유성기업 충북 영동공장에서 18년째 일해왔다. 몇 년을 빼고는 거의 야간조로 일했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내내 서서 일한다. 야간근무를 한 뒤로 소화가 안 되기 시작했고, 낮에는 잠이 안 와 늘 피곤했다. 박씨는 ‘24시간 맞교대’에서 ‘주간 연속 2교대’로 근무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에 그나마 희망을 걸었으나 회사의 불성실한 교섭 자세로 여전히 야간근무 중이다. 사고 직전인 5월18일에도 박씨는 야간조로 밤 10시에 출근했다. 출근했더니 회사가 ‘직장폐쇄’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씨는 동료 60~70명과 함께 충남 아산공장으로 향했다. 자정쯤에 도착했다. 1시간쯤 뒤 회사에서 고용한 노조 감시원(용역)들이 주위를 돌고 있는지 200여명의 조합원들이 살피러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얼굴뼈가 부러진 김아무개(46)씨는 아예 사고 당시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0여명의 조합원과 함께 용역 찾기 작업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달려들었다. ‘퍽’ 부딪혔고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서 1시간 반 수술을 했다. 김씨는 “정신을 차린 뒤 인터넷에 돌아다닌다는 내 사진을 보니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고 말했다. 사고 직후에는 왼쪽 어깨에 감각이 없고 움직일 수 없었다. 계속 물리치료를 받아 일주일이 지난 26일에는 움직일 수 있고, 감각이 느껴진다. 대신 감각이 온통 통증이어서 아프다.
현장에 있었던 김아무개(34·유성기업 노동자)씨는 사고 당시를 “아비규환”이라고 말했다. 도로는 왕복 2차선 도로였다. 조합원들이 용역차를 발견하자, 앞에 서 있던 승용차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나갔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차량 앞을 막아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을 제치고 가버렸다. 헤드라이트 덕에 사람들이 차량을 인지할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카니발 차량은 달랐다. 앞의 승용차가 달려간 뒤 갑자기 시동을 걸었다. 차량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은 엔진 소리에 피했지만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김씨는 대열의 맨 뒤에 서 있었다. 김씨는 뒤에서 “비켜, 비켜” 소리쳤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미처 듣지 못했다. 카니발 차량은 처음에 4명의 사람을 치었다. 그런데,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액셀을 더 밟았다. 김씨는 “처음에는 시속 20~30㎞정도로 달리는 것으로 보였어요. 그런데 사람을 한 명씩 4명을 치고 나더니 그 다음에는 시속 50~60㎞로 달렸어요. 그러고는 인도에 있는 사람들 7명을 차례로 치면서 속도를 더 올려 붕~ 하고 달려나갔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차가 지나갈 때마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사람이 퉁퉁 튕겨져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처음 치인 사람들은 옆으로 픽 쓰러지는 정도였으나 나중에 치인 사람들은 차량 위로 붕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너무 높이 떠서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테러 주인공은 불구속, 합법파업 노동자들은 구속 총 13명에게 부상을 입힌 운전자 이아무개(25)씨는 누구일까. 노동조합은 즉각 “회사가 고용한 용역직원”이라고 주장했다. 사고에 이용된 카니발 차량은 소유주가 명확치 않은 일명 ‘대포차’였다. 이씨는 사고를 내고 약 300m가량을 더 달린 뒤 차를 두고 도망갔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2시께에 충남 아산경찰서로 찾아가 자수했다. 애초 이 사고는 아산경찰서 교통조사계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로 수사 중이었다. 이씨는 경찰에서 “갑자기 노조원들이 몰려와 피하려다 사고를 냈다”고 진술했다.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광철 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인도로 돌진한 데다, 사람을 친 것을 알고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상해를 입히며 달려나갔기 때문에 고의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과실에 의한 상해에 해당하는 뺑소니가 아니라, 살인미수나 고의상해로 수사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충남아산경찰서는 24일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등이 항의를 함에 따라 이 사건을 재수사한다는 입장을 뒤늦게 밝혔다. ‘대포차 돌진 테러’ 발생 닷새 뒤 노동조합의 합법파업은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됐다. 500여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체포됐으며, 그 중 100여명은 26일 오후 4시 현재까지 경찰에 잡혀있다. 13명을 고의로 들이받은 이씨는 불구속상태다. 대한민국 법치의 저울은 과연 공정한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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