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노동조합과 민주주의




얼마전 무노조주의를 고수한 삼성에 민주노조가 깃발을 올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4명이라는 적은 조합원수이지만, 삼성이 그동안 노동조합 건설을 무지막지하게 막아왔던 것을 감안하면 그나마도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노조설립하자 마자 역시 삼성은 삼성답게 노조간부 징계를 서두르며 노동조합 파괴를 꾀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무노조’ 너무 의식한 삼성 … 노조 탄압 시작됐다


최근 여러 노동현안들을 살펴보면서 한가지 드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왜 정권과 자본은 노동조합이라면 치를 떨고 반대하고 나서나 하는 ...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야, 노동조합이 생기면 저항세력이 생기는 거니까."
"자기네들이 다 해먹어야 하는데 못해먹으니까."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너무 강성이라 경제를 망치니까."
등등...



노동조합은 엄연히 법이 보장한 조직이고,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교섭할 권리를 가지고 더 나아가 이를 보장받지 못하면 당연히 실력행사인 파업을 할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이는 심지어 헌법에서 보장한 권리입니다.

그럼에도 마치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엄청난 범죄행위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일제에서 해방된 당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다시 미군정으로 전환되면서 친일파가 득세한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저는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조차 침묵과 굴종으로 일관해야 했던 과거가, 우리의 시각을 편협하게 만들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 우리 헌법 제 1조에는 누구나 알듯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현대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의 독재를 겪으며 마치 모든 권력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릴 적 생각을 해 보면 학교에서는 민주주의를 교육시킨답시고 반장, 학생회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도록 했지만, 출마자격은 공부 잘 하는 학생으로 선생님들이 지목했죠.
그리고 반장, 학생회장은 학생들을 대표한다기보다 선생님을 대신하는 아이였습니다.
이런 잘못된 민주주의 교육은, 우리에게 사회는 가진자, 배운자를 우대하는 서열사회임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국민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다고 하면서도 사실상은 돈 없는 사람은 선거에 출마할 실질적 자격을 갖지 못합니다. 누구나 다 알듯이 선거 자체가 휘황찬란한 돈잔치,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돈의 위력과 권력의 힘 앞에 초라해지는 자신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내가 일하는 직장으로 가 봅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는 신성한 노동은 취직하는 그 순간부터 가장 비참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잔업, 철야, 특근, 야근을 밥 먹듯 해야 간신히 살만한 세상입니다.
사회적 보장도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해고는 그야말로 생계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돈 앞에서 비겁해지고 나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걸 반대하고 만든 것이 노동조합입니다.
돈의 가치보다 사람의 가치를 선언하고 일하는 직장의 주인이 자본과 사장만이 아닌 일하는 사람들임을 선포한 것이 노동조합입니다.

그런데 자본과 정권이야말로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않기에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들어진 합법적 조직에 대해 거부감과 적대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88년 11월13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전노협 주최‘노동악법 개정촉구 전국노동자대회’. 단병호(왼쪽에서 두 번째)∙이석행(왼쪽에서 세 번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노동해방이라고 적힌 혈서를 들고 있다. 사진제공=민주노총 ⓒ 매일노동뉴스
95년 11월11일 민주노총 창립대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연세대학교를 빠져나와 여의도 쪽으로 행진하는 모습. 사진제공=민주노총 ⓒ 매일노동뉴스

비단 삼성뿐 아니라 현재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도 그렇습니다.
노동자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측의 일방통행으로 대량의 해고사태를 가져오고 그 속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파괴되는데도 오만한 자들은 "경영권" 운운하며 노동자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몰고 있지요.

만일 노동조합이 경영에 참가하려 하면 그들은 경영권이라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권리를 주장하며 아우성을 칩니다.
우리 법에는 노동권은 국민의 기본권리로 규정한 반면 경영권이란 것은 없습니다.

당장 직장을 잃으면 살길이 막막해지는 노동자들이 진짜로 회사를 망하게 하려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최근 이슈가 된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이 노동자때문에 어려워졌습니까?
오히려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가하여 의견을 개진하게 되면 막을 수도 있었던 경영위기를,
오로지 자신들의 배만 불리기 위해 쉬쉬하며 회사를 운영한 탓은 아닐까요.


지난 해 지자체 선거에서 지방권력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분위기를 힘입어 우리 사는 동네에도 시정참여위원회 등을 만들어 시민들이 직접 시정을 듣고 의견을 제시하는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시민들과 소통할 줄 몰랐던 공무원사회는 소통하자고 만든 시정참여위원회에 '기밀유지각서'란 것을 제시하면서 항의를 받았습니다.

소통할 줄 모르는 정권, 소통할 줄 모르는 자본.

그들의 모습은 단 하나로 통합니다.
바로 독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