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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원탐방은 개인이 아닌 ‘청소년 노동인권 강사단’으로 정했습니다.


우리 안양군포의왕을 비롯해 몇 군데의 노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작게 시작한 청소년 노동인권 사업이 이제는 규모면에서나 질적인 부분에 있어 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급증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의 수에 제대로 포함되지 않는 이들이 바로 노동하는 청소년들이므로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알고 스스로의 철학적 삶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안양군포의왕 비정규직센터는 올 상반기 약 4개월에 걸쳐 새로운 강사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이로써 양의 확장에 의한 질적인 도약이 가능해져 보다 안정적인 청소년 노동인권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 1학기 동안 학교 수업 등 청소년들과 함께 노동인권을 이야기한 경험을 지닌 강사들이 각자의 소감을 피력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편의상 5가지 부분으로 나눠 질문을 드렸는데 구체적인 답을 주신 분들의 글을 게재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이번 수업에 임했던 마음가짐
2. 특히 기억에 남는 수업
3. 학생의 인상적인 질문
4. 강사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 것이 있다면?
5. 수업 마친 소감



    답변하신 선생님들은 익명으로 했습니다.

    강사단 여러 선생님들 답변을 주제별로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올 7월에 처음 수업을 진행하신 분부터 3~4년의 경험이 있는 분까지 다양한 강사 분들의 답변이 함께 있습니다.





1. 이번 수업에 임했던 마음가짐


  • 작년까지는 근로기준법을 강조하는 수업을 했다면, 올해는 노동을 바라볼때 인권의 눈으로 바로보고 싶었습니다. 강제노동은 현대가 되면서 사라졌는가! 법이 있다면 그 기준이상을 지키는가에 대해 중심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구요.


  • 지난 한해 산본e비지니스고와 전주 특성화 학생 사망사건을 접하며 제가 하고 있는 일의 역할과 해야하는 책임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특히 고3학생들을 만나면 지금 여러분들이 겪고있는 삶의 무게보다 더 행복한 일이 많다. 그러니까. 겁많은 어른과 달리 용기를 내달라. 아니다 싶을때 그만둘수 있는 용기. 라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아이들이 이 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발견하고 어떻게 바꿀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7월 20일 첫 수업이라 많이 떨렸습니다. 전날 잠까지 설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면서 계속 그간 공부했던 내용을 반복 암기하기 바빴던 것이 사실이였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하면 실수 없이 수업을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만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몇 년째 청소년 노동인권 수업을 하고 있지만 늘 새롭고 긴장됩니다. 처음 시작할때의 용감함과 뜨거움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수업은 긴 공백기간 동안 여러가지 가슴아픈일들이 많아서인지 어느때 보다 어른으로써 부끄러움이 많이 느껴지는 수업 이었습니다.


  • 물론 이 사회의 아름다운모습들이 없다는건 아닙니다. 다만 아픈 사회에 아픈 채 준비없이 내 던져지듯 성인이 되어버리는청소년들의 삶이 안타깝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업은 저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이 아프고 무겁고 죄스러운심정으로 임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 졸업하면 자기 자신이 어차피 비정규직 밖에 될것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들, 때로는 반 전체가 자기자신은 모두 정규직이 될거라고 확신하는 친구들, 구제 방법과 절차가 있어도 어른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망설이는 친구들, 세상을 향해 분노를 내 뱉은 친구들, 정해지 답, 교과서 같은 답, 선생님이 좋아할 만한 답을 하는 친구들. 이 모든 모습들에 나 자신의 모습도 거기에 있기에 공감이 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참 작았고, 동시에 그 작음이 한 명 한 명에게는 너무나 크다는 걸 알기에 한 마디 한마디 신중할수 밖에 없었던 수업이었습니다.




2. 특히 기억에 남는 수업


  •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이 학교를 떠난 상황에서 본인도 앞으로의 진학을 고민하던 학생이 생각납니다. 학생을 품어주고 언제든 돌아올 둥지가 되어야 할 학교가 학생들을 울타리 밖으로 내보내는 현실은 제게 많은 고민을 던져 주었습니다.


  •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려웠던 일을 하소연 하는 친구를 보면서, 제가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었습니다.


  • 청소년노동인권 수업 직전에 졸업사진을 찍었던 반에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분위기가 어수선하여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이 될 수 있을까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로부터 받은 소감 중에 ‘노동인권과 근로기준법에 대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단순히 학생이라고 차별당하지 않고 당당히 요구하겠습니다. 또한 입장을 바꾸어서 아르바이트하는 분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베풀고 따뜻한 말한마디 건낼게요’라고 적힌 소감을 발견하고 참으로 고마웠고 기억에 남는 수업이 되었습니다.  



3. 학생의 인상적인 질문


  • 돈없고 백없으면 열심히 일해야 되는거 아닌가요? 12시간이 넘게 일하는건 당연하다고 하던 학생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 수업내내 말이 없다가 롯데리아에서 감기가 들어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가 점장이 cctv로보고 그날 해고 당했다는 친구가 생각납니다.


  • 최저임금을 올리면 물가가 오르고 영세 사업자들이 어려워 진다는 걱정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지배이데올로기에 오랫동안 세뇌당한 우리의 모습이 보여서 슬펐습니다....


  • '선생님 대신 전화해 주시면 안되요?'


  • 서울대공원에서 근로계약서 없이 일했던 학생인데, 어느날 근무관련 정보를 받던 단체카톡방이 사라지고 자신은 다시 초대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부당해고 신고를 할 수 있는지 물어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일하던 곳에서 한마디 설명도 없이 이유도 모른체 내쳐진 기분을 느껴야했을 아이의 상처가 느껴져 마음 아팠습니다. 



4. 강사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 것이 있다면?


  • 친구들의 열의와 욕망은 충분한데 이것이 법적인 구제를 받을수 있다 혹은 없다. 라는 답변밖에 할수 없다는 사실에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 내가 한 사람의 인생경험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상당 마음 무거우면서도 불편했던, 그리고 더 정확히 공부하고 함께 이야기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매순간 수업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많은 생각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낍니다. 당장 방학을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계획하고 있거나, 졸업을 앞두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3학년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들이 마주하게 될 사회가 온당한 대우와 존중을 해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상처를 입은 아이들에게도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려 하지말고 상담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현명한 방법과 절차를 논의하라고 하지만, 어찌됐건 제3자로서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기에 당사자인 아이들에겐 쉽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래서 정말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을 인격체로 존중하며 진심으로 이야기하려하지만, 그 진심이 전해질까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습니다. 


  • “권리 구제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하지 않으면 너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고 그건 너의 선택이야” 라고 말하기에는 제 스스로 아직 준비가 덜된것 같아요. 아직은 마음이 불편하고 무거워요.



5. 수업 마친 소감


  • 지난 해와 달리 올해의 친구들은 더욱 적극적이고 더 많은 권리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조금씩 아니 어쩌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더 많이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다음 수업은 어떻게 하지?


  • 좀 더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면 이 친구들에게 귀에 쏙쏙 들어올 수 있게 준비가 잘 되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친구들이 지금 직접 겪는 사회의 현실과 내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내용들도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었는데... 지금은 그 권리가 현실과 동떨어질때 어떻게 해야하나... 숙제가 남았습니다.


  • 본인이 일하고자 하는 곳에서 근로계약서를 써주지않으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그런 곳에서 일하지 않겠다’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우리의 활동이 조금씩 의미를 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회가 오늘 당장 달라지지 않겠지만, 앞으로 청소년들이 사회에 나가기전에 노동인권에 대해 모두들 배워서 알고 사회에 나간다면,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 아이에게 “너 아니어도 일할 친구들 많아”하고 대응하던 사업주들이 더 이상은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되겠지요.


  • 돈과 법을 넘어서, 일하는 노동자 누구나 사람으로 대우 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더욱 진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으로 활동하는 청소년노동인권교육 강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시한 번 새겨 봅니다.


  • 나 스스로 인권과 노동가치에 대한 더 철학적인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늘 부족함을 느끼죠, 내 삶에서 나 자신의 노동인권에 대한 삶의 변화가 수업에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러니 더 알고 싶고 더 공부하고 싶어요.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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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oon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8.15 15:57

    선생님께 많은걸 배워가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안양군포의왕 비정규직센터(이하 비정규직센터) 2017 3월부터 매달 회원 탐방을 진행한 후 소직지를 통해 알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회원 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온라인 지면을 통해서나마 서로를 알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면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번 회는 '안양자주학교'(이하 '자주학교')편입니다. 교장을 맡고 있는 이재윤 회원을 찾아 개인의 삶부터 자주학교 운영자로서의 애환, 그리고 비정규직센터에 대한 애정어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 안녕하십니까. ‘안양자주학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세상을 한껏 끌어안는 당당한 우리들의 터전, 안양6동에 자리 잡은 ‘안양자주학교’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부방이고 2005년 3월 2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1년 정도 준비 과정을 거치며 안양사랑청년회 회원 네 명이 시작하여 여섯 명까지 늘었고 저는 2006년부터 함께 하여 2009년부터 교장을 맡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대안학교를 생각하기도 했으나 지역의 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 형태로 운영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이유로 학교라는 명칭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자주학교’는 소규모 작은 공부방으로서 맞벌이 하는 노동자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교실을 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를 나선 후 다시 학원 차에 올라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의 경우 집에 자녀를 둘 수밖에 없으므로 부모는 불안한 마음을 지닌 채 일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형편에 놓인 가정의 자녀들을 집에서처럼 함께 밥을 먹고 공부도 가르치며 부모님의 귀가시간에 맞춰 밤 10시까지 돌봐주기도 했습니다. 


'안양자주학교' 교장인 이재윤 회원




2. 소개 잘 들었습니다. 이재윤 회원께서 ‘자주학교’에 뛰어든 이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안양에 있는 성결대학교를 다녔습니다. 총학생회 간부를 하면서 자연스레 지역 청년모임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2004년에 ‘자주학교’에 합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간에 잠시 나가 있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결국 원년에 함께 하던 분들이 각기 다른 사정으로 떠나고 혼자 남았습니다.


제가 성장한 곳은 인천 간석동이었는데 이 지역은 매우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동네 길에 소똥이 널려 있는 것은 예사였고 카바이트 광산이 있어 환경적으로도 열악했습니다. 주변에 나환자촌도 있어(과거 편견이 있던 시절) 어린 아이들이 밝게만 자라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꿈이 도덕선생님 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도덕선생님은 장애가 있는 분이셨는데 늘 용기를 주고 칭찬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나도 나중에 교대에 진학하여 도덕선생님이 되자는 꿈을 가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란 환경과 그때 선생님의 영향에 의해 간직했던 저의 꿈이 이렇게나마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 현재 ‘자주학교’의 현황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현재 방과 후에 자주학교에 와서 부모님이 귀가하는 시간까지 함께 있는 아이들은 9명입니다. 원래 밥을 먹이고 공부 가르치면서 밤 10시까지 운영을 했었지만 지금은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새벽에 군포 물류센터의 택배 차량으로 서울 구로와 신도림 일대의 공구상가들에 배송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일을 마친 후 이어서 밤 10시까지 자주학교 운영하는 일을 2년 넘게 하다 보니 몸이 망가지게 되어 시간을 단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운영 시간을 줄이다보니 원래 해오던 두 가지 일, 즉 집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과 공부 도와주는 일 모두를 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은 학습지 교사 일을 하고 계시는 한 분 선생님께서 재능기부 형식으로 매주 한 번 방문하여 아이들의 공부를 돌봐주시는 자원봉사를 해주시고 있는 일입니다.



4.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도 쉽지만은 않을 듯 한데요 운영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요? 그에 앞서 운영의 재정적 부분에 대해 설명해 주실수 있겠습니까?


현재 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자주학교의 월세가 25만원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오면 각자 공부와 숙제 등을 하는데 필요한 컴퓨터가 몇 대 있는데 이를 사용하는데 전기요금과 인터넷요금, 그리고 정수기 등의 요금이 가장 기본적인 비용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먹거리도 큰 문제이긴 합니다만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여자수산에서 주시는 반찬으로 수요일까지 해결 가능합니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제가 떡볶이나 볶음밥 등을 직접 만들어 제공합니다. 간헐적으로 지역 내 먹거리 나눔 단체 등에서 나눠주시는 음식으로 해결하기도 합니다.


매달 들어오는 후원금은 약 50만 원 정도인데 한 회사의 직원들이 월급의 만원 단위 이하 끝전 모으기를 해서 8만 원 가량 지원을 해오고 있으며 개인 후원자들께서 cms를 통해 약 30만 원, 지인들이 보내주시는 10만원 등입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독지가께서 오랫동안 매달 120만 원을 후원해 주셔서 큰 도움을 받아 왔습니다만 사정에 의해 이 후원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5. 여러 분들께서 도움을 주고 계시는군요. 그런데 큰 후원이 끊겨서 매우 힘들어졌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적자인 것은 맞습니다. 현재 월 25만 원인 월세를 5개월 넘게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건물주께서 그냥 기다려 주고 계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한데 제가 행정적인 절차 예를 들어 후원금 영수증을 발행하는 것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도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이유는 변명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후원회원을 더 모집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인 것은 맞습니다.



6. 어찌되었든 ‘자주학교’를 여기까지 끌고 온 자체가 대단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윤 회원에게 있어서 노동이란 무엇입니까?


일하는 것이죠.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노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자주학교를 매개로 해서 관계 맺으며 즐겁게 살고 있노라고 말씀 드릴수 있습니다. 노동에 대해 저만의 정의를 내리자면 일 한 만큼의 가치가 돈 또는 어떠한 물질이거나 정신인 형태의 반대급부로 돌아와 자신이 행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 받아 스스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일을 해봤지만 그것들의 목적은 모두 돈이었습니다. 그런것 보다는 일을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즐거워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는 지금이 좋습니다.



7. 그렇군요. 이재윤 회원은 돈을 바라는 일보다는 자신이 사람들과 함께 하며 즐거움을 찾을수 있는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바보같은 질문이긴 하지만 만약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대가가 돈으로 지급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금액에 해당한다고 보십니까?


제가 ‘자주학교’에서 기여하는 활동을 스스로 가늠해볼 때 최소한 3백만원 정도에 해당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웃음)



8. 비정규직센터의 회원으로 가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정규직 즉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라는 취지에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저를 1백번째 회원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101번째 회원이 되었습니다. ‘안양사랑청년회’ 회원들의 조직적 결의도 있었는데, 개인적 뜻에 더해 대학 때부터 활동한 이 지역의 기풍에 의한 것도 있었습니다.



9.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회원도 많겠지만 회원들께 부탁 또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아울러 비정규직센터에 대해서도 해주시죠.


잘 된 조직은 이야기가 잘 먹히고 또 그것을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회원탐방도 그런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의 바람 중에는 비정규직센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일단 소식을 많이 알려 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회원들도 자신의 소식을 센터에 많이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비정규직센터의 사무국에 있는 소수의 인원이 회원들에게 직접 전화 통화를 하려면 많은 날들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단체문자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도 있기 때문입니다. 센터에 대한 회원들의 감시의 눈길도 필요하기 때문에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질타를 해주고 잘하고 있는 것은 박수를 쳐주는 등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0. 끝으로 ‘자주학교’ 관련해서 회원들게 한말씀 하신다면?


‘자주학교’ 많이 사랑해 주세요





인터뷰 후기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시민 사회 단체들이 있으며 그 안에서 많은 분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곳도 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도 아직 많이 있습니다. 비정규직센터 역시 악조건 속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비정규직센터의 경우 상근비가 없으면 재능기부하는 마음으로 활동하면 될 일이고 사무실 운영비가 모자라면 천막이라도 치면 될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주학교’는 부모님을 대신해 밥을 먹이고 공부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가정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비용이 필요합니다. 비정규직센터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며 활동하지만 ‘자주학교’는 그저 몇 명의 아이들과 소탈한 일상을 티나지 않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그랬지만 나중에 녹음 파일을 들으며 정리하면서 다가오는 감정은 안타까움과 잔잔한 감동의 교차였습니다.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며 활동하고 있는 이재윤 회원께 감사드립니다. 이상 '안양군포의왕 비정규직센터' 대표 김상봉 이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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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e woon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6.30 17:23

    수고많으셨습니다. 자주학교와 비정규직센터에 함께 하시는 모든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2. 민병덕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7.01 21:59

    저도 철거촌 공부방 교장출신입니다. 너무나 이재윤교장의 맘과 운영의 어려움 동감합니다. 좋은 일..지속가능한 구조가 필요한데

    • 김상봉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7.07.05 16:02

      민 변호사님도 그런 역사가 있으시군요. 지닌 소중한 경험들 많이 나누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안양군포의왕 비정규직센터(이하 비정규직센터) 2017 3월부터 매달 회원 탐방을 진행한 후 소직지를 통해 알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회원 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온라인 지면을 통해서나마 서로를 알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면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4월 25일 주연테크 노동조합을 찾아 설립과정부터 험난한 투쟁의 시기를 거치며 오늘까지 이르게 된 역사를 김영신 지회장을 통해 들어봤습니다. 참고로 주연테크 노동조합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의 지회로 편재되어 있습니다. 

  

 


문1. ‘주연테크 노동조합’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주연테크 노동조합은 2006년 7월에 설립되었습니다. 저는 2004년 입사한 후 노동조합이 설립된 2006년 7월 부분회장으로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회사측은 2008년에 경제가 어려워 질 것이 예상된다며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던 공장의 이전과 인원 감축을 시도했습니다. 경기도 안양으로의 이전은 결국 거리상 출퇴근이 힘들게 된 직원들로 하여금 퇴직하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인원 감축은 결과적으로 노동조합원의 수가 줄어들어 그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지도부가 해고 통보를 받는 등 험난한 길을 걸어 왔지만 남아있는 노동조합원의 단결과 투쟁으로 극복한 후 지금까지 주연테크 전체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켜내는 파수꾼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2. 김영신 회원께서 노동조합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생이던 언니가 학생운동을 하고 있어서 그 영향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소련에서 개혁 개방의 물결이 일어나는 등 국제적인 환경 변화를 보면서 더욱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공장에 취업해 일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생산현장이 세상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책에서 읽은 내용들이 모두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도 점차 알게 되었지만요. (웃음)



김영신 주연테크노동조합 지회장




문3. 개인의 삶이란 것이 각각의 점과 점으로 이어져 온 것이기에 개인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김영신 회원께 노동이란  무엇이었습니까?


처음 공장에 들어가겠다고 할 때 부모님 반대가 심했습니다. 결국 어머니께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나왔어요. 사실 노동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때론 힘든 노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 변혁의 주체는 노동자이고 이들이 모이면 못 할 것이 없다고 책에서 배웠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개인적이고 이기적이지 않습니까? 사람에게 치이고 현장에서 서로 왕따 시키거나 당하기도 하고 그런 환경이 아닌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노동이 즐거움을 주는 행위 였으면 좋겠습니다. 



문4. 김영신 회원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노동이란 것이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철학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주연테크 노동조합의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안타까운 점은 과거 투쟁을 거치며 노동조합원과 비조합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앙금이 생겨 남아있는 현실입니다. 회사측에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둘 사이의 차별감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에는 운영진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운영진이 어떤 목적으로 인수한 것인지 지금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자본가의 속내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당시 고용불안의 위기에 놓인 서울 상암동의 본사 직원들이 대거 노동조합에 가입 하기도 했지만 큰 위기상황 없이 잠잠한 상태가 유지되자 도로 탈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노동자가 위험을 직감 했을 때 찾는 것이 노동조합이라는 점과 잠시나마 노동조합에 들어와 진실을 알게 된 점은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동질감도 형성되었고 공장과 본사 노동자들 사이에 소통 창구가 마련되었으니까요. 



문5. 노동과 관련해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시죠.


특별히 할 말은 없습니다. 다녀온 분들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쿠바는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합니다. 급할 것도 없고 국가가 많은 것을 지원하기도 하니까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한 사회를 보면서 답답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6. 좋은 말씀입니다. 폴 라파르그가 쓴 <게으를 권리> 라는 책을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끝으로 김영신 회원께서 비정규직센터의 회원이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덧붙여 비정규직센터 또는 회원들께 당부의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회원이 된 이유는 비정규직에 관심이 있으니까 가입한 것 아니겠습니까?(웃음) 1998년에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졌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해 기업들이 원상회복을 넘어 훨씬 잘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를 줄이기는 커녕 급증하고 있는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제는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할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워야 할 노동이 마치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 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의 경우 찾아서 일을 하지 않으면 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정규직센터 역시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무언가 찾아내서 일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을 잘 알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비정규직센터는 안양군포의왕 지역에 적을 두고 있으니 지역운동으로 뿌리 내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센터가 설립된 후 초창기에는 저도 많이 갔었습니다만...(웃음). 아무튼 이렇게 회원탐방의 시간을 마련해서 방문해 준 것에 대해서 좋은 마음입니다.



약 1시간에 걸쳐 인터뷰에 응해주신 주연테크노동조합 지회장 김영신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상 비정규직센터 대표 김상봉이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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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군포의왕 비정규직센터(이하 비정규직센터)20173월부터 매달 회원 탐방을 진행한 후 소직지를 통해 알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회원 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온라인 지면을 통해서나마 서로를 알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면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첫 탐방은 난치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여러 사업을 펼쳐온 난치병아동돕기운동본부 희망세움터의 대표를 맡고 있는 문경식 회원을 만나서 단체의 설립과정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들어봤습니다. 문경식 회원이 희망세움터에 합류하게 된 동기도 들음으로써 그의 삶의 궤적과 철학을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비정규직센터에 대한 따끔한 질책과 함께 애정 어린 당부 말씀을 끝으로 한 시간여 넘게 진행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문경식 대표(오른쪽)

 

 

 

1. 난치병아동돕기운동본부 ‘희망세움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안양지역의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을 논의 한 결과 안양, 군포, 의왕, 과천 등에 거주하는 희귀병에 걸린 아동의 수를 조사해보니 16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저는 2002년 진행된 실태조사를 돕기 위해 합류하게 된 후 희귀병 아동들의 치료비 모금과 지급 등의 사업을 하던 한무리교회 나눔의 집에서 사무국의 일을 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체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자 민간단체 등록을 했고 2010년에는 공부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공부방에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 난치병 아동들의 치료비 외에 일상생활 비용도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으나 문제는 자금 마련 방법이었습니다.


간절한 바람이 통했다고나 할까요, 우연히 생명보험재단이 3억 원을 들여 희귀질환종합케어센터 사업을 공모하는 안내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공모 중에는 신청자를 만나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찾아가 무조건 저희에게 달라고 이야기 했는데 의외로 1억 5천만 원이라는 사업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겁이 없던 때여서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웃음)


5천 만원을 인테리어 비용으로, 1억 원은 1년간의 운영비용을 지급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무리교회의 작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공간 마련이 급선무로 떠올라 지역사회에 하소연 하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의 개인사업가가 나서서 1천4만 원을 먼저 기부해주셨고 시민사회에서 앞장서 활동하던 여러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8천만 원에 달하는 자금을 만들어 주셔서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희귀 질병에 대한 치료를 하다 보니 심리재활 치료도 필요함을 알게 되어 공간을 확장했고 아동에서 청소년, 청년으로 성장하는 당사자들을 돌봐줄 장소나 프로그램이 없었으므로 부모님들과 협의 준비기간을 거쳐 협동조합 카페를 설립하여 올 3월 9일부터 ‘성인주간보호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2. 말씀을 듣고 보니 2002년에 ‘희망세움터’에 공식 합류하게된 것은 개인적인 고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희망세움터’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학생운동 시절 교지 편집장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선배였던 이철규 열사 추모사업회 일을 1년여 하면서 뭔가 답답함을 느끼면서 사는 방식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했었습니다.


건설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한적도 있고 병원 원무과장도 해봤습니다만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가내수공업 공장에서 노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일 자체는 재미있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이때 순간순간 행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서른여덟살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 무렵 한무리교회의 공부방에서 방학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부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01년부터는 아예 직원으로 한무리교회 나눔의집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대학때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덕분에(본인은 정치외면학과라며 웃음) 외무고시 공부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오전에 공장에 출근하여 노동을 하고 퇴근 후에는 밤 10시까지 학생들에게 공부 가르치는 삶을 이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이걸 꼭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2003년부터 사무국장직을 제의 받고 일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시 치료 받는 아동을 둔 부모님들은 제가 1년 이내에 그만 둘 것이라는 예측을 했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라서 부모님들의 마음을 모를 것이라 짐작 하며 하신 말씀이었죠. 아직까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말씀을 했던 분들이 깜짝 놀랍니다.

 


3.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문경식 회원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바쳤을 노고와 헌신이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삶이 특별한 목적 보다는 삶의 궤적 자체의 흐름을 타고 운명처럼 여기까지 오신 것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또한 지금에 와서 보면 난치병 아동의 문제는 결국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단체가 열심히 활동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 활동을 하면서 지역 활동을 한 지 8~9년 됩니다.

 

 지역의 후배들과 함께 ‘대안과 나눔’이라는 단체를 만든 것도 그 중 하나인데 목표는 지역사회 운동 방식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경직성으로부터 탈피하고 지쳐있는 활동가들의 쉼터와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4. 단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잘 이끌어 오신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비정규직센터의 운영에도 좋은 방향타가 되어 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특별한 비결보다는 수많은 시간이 겹겹이 쌓이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희 후원자 수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3백명이 되었을 때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 2월에 5백 명을 넘기면서 나름 순항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욕심 같아서는 1천명 정도의 후원회원이 유지 된다면 보다 많은 일들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어느 단체의 회원이든 그 본질은 자신이 후원하는 단체에 마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아도 회원들은 늘 단체가 무엇을 하는가 주시합니다. 후원자는 일단 동지로서의 정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다시 회복하는데 시일이 많이 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소식을 알리는 등 회원과 관련한 사업에 있어서도 무리한 계획을 짜기 보다는 할 수 있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감사장을 드리는 등의 방식으로 회원과의 만남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잘 진행되었으나 때로는 회원이 잘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저희가 작은 비누라도 하나 만들어 직접 회원을 방문합니다.

 


5. 역시 오랜 세월 단체를 탄탄하게 해 온데에는 특별한 비결보다는 하나하나 성실하게 실천하고 이루어 온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단체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힘든 점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요?

 

일단 난치병센터를 통해 아동들을 돕는 활동하다보니 구조적인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까지 고민하며 활동을 해야 합니다. 직접 몸으로 뛰는 상근자들이 지치지 않고 의욕을 가지고 일을 해줘야 하는 만큼 육체적 피로감이 들지 않게 하거나 처우의 상향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한주 근무시간을 35시간으로 하는 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지만 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말의 경우 따로 전담하는 상근자를 공모사업을 통해 채용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일반 시민들은 우리와 같은 단체들이 비정치적으로 놓여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까닭에 난치병 대표가 집회 등에 나가는 일에 대해 불편해 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조율 하는 것도 힘든 부분 중 하나입니다.


추가로 정부지원이 20% 정도 되는데 50%까지 올리면 좋겠지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후원 공모사업에 지원을 많이 하는데 실무자들이 그 일에 매달리면서 지치기도 합니다.

 




6. 비정규직센터에 조언을 해주신다면


관리가 안되고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2016년 총회 당시 저희 직원에게 비정규직센터 회원으로 가입할 것을 권유했는데 2017년에 들어와서 연락 한 번 왔다고 합니다. 회원들은 안보고 있는 것 같아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열심히 투명하게 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면 바로 등을 돌리게 됩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소식을 알림으로써 비정규직센터가 회원을 잊지 않고 감사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7. 끝으로 회원으로서 비정규센터 또는 회원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과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비정규센터의 역할이 지역사회에서 많이 필요합니다.. 비정규직센터가 노동현안의 중심에 서서 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비정규직센터의 회원들이 간헐적이라도 지역에서 어렵게 사는 계층과 함께 나누고 더불어 사는 모티브가 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전 대통령 박근혜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된 날입니다.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가 훼손된 것을 지켜보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작은 결실을 맺은 날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장벽들을 만나게 되겠지만 과거에 매몰되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나부터 큰 힘을 가지고 실천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3월 10일 역사적인 날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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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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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2심의 결과가 좋아 나름 기대도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우리 사회 법상식을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당사자인 쌍용차 해고자들은 오죽할까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자본의 모든 것은 보호받고 노동자의 모든 권리는 박탈당하는 현실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말씀하셨듯, 자본계급의 처절한 계급투쟁입니다...

 

 

 

오늘 오마이뉴스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어제 본 영화 <카트>의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흩어진 해고자들을 설득해 다시 점거를 들어가기 전,

엄마는 아들을 안고 말합니다.

"엄마가 며칠 못들어올거야...."

 

 

 

 

해고자 이창근씨가 판결소식을 듣고 아들에게 입을 맞추는 사진기사의 제목은

"주강아, 아빠 이제 집에 더 못들어 오실거야"

입니다.

 

영화같은 현실, 현실같은 영화.

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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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구남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19 21:03

    쌍용이망하면 정말갈곳도 없겠지요
    하지만 그마음 이해됩니다
    정부가 쌍용도 살리고 해고자들도 살릴수있는 그런방법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2. 대구남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12.19 21:07

    국민들이 쌍용을 살려주면 조으련만 ...
    그러기엔 쌍용이 아직 덜 절실한가봅니다
    이런저도 쌍용차를타며 쌍용을 응원하는 사람이지만.
    쌍용은 아직까지 철판이 두꺼워서 안전하다?
    그것만이 쌍용입니다 . 국민들의 이런 고정관념을 버릴수 있게끔 만들수있다면 두마리 토끼를 잡을수 있지싶습니다.

전태일열사 44주기

오늘 <카트>가 개봉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바대로 카트는 2007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형마트 비정규직 투쟁을 다룬 영화입니다.

아직도 수많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노동을 하며 살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실화이니만큼 결과를 알기에 헤피앤딩일 수 없는 영화지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영화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겠지요.

 

영화가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담담합니다.

흔히 생각할만한.... 노동조합을 만들어 뭔가 당당해지고 뭔가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도 없습니다.

너무나 현실적이게도...

노동조합을 만들도고 개무시를 당하는 이 땅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로 몽치면 목소리라도 낼 수 있겠다 싶었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여성노동자로서 생계까지 책임지는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복직해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장면

손배가압류를 비롯한 자본측의 온갖 편법적 노동조합 파괴시나리오는 정말 잔인할 정도로

우리 사회 노동문제 속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7년 이랜드, 홈에버만이 아니라 뉴코아도 파업을 했습니다.

뉴코아는 정규직이었고 이미 노동조합이 있었습니다.

당시 뉴코아가 이랜드로 넘어가는 과정이었고 이랜드 비정규직의 투쟁에 뉴코아 노동조합은

노동자적 연대로 파업투쟁에 돌입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투쟁을 이랜드 뉴코아 투쟁이라고 불렀죠.

 

영화 속에서는 더마트 정규직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으로 묘사된 듯합니다.

 

 

파업이 끝나고 한참 뒤.

당시 파업에 참여했고 현재도 뉴코아에서 일하는 한 친구와 당시 파업투쟁에 참여했다가 퇴직하고

파전집을 하는 분 가게에 갔었습니다.

 

두 사람은 2007년 파업투쟁을 떠올리며 정말 서럽게 울었습니다.

우리 정말 열심히 싸웠는데... 라며...

 

영화를 보는 내내 아직도 뉴코아에서 감정노동을 하는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저 투쟁의 주인공이기도 했지만 진상고객때문에 한숨과 눈물을 밤새 흘렸던 그 친구의 모습이

영화 속에 나오는 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에 있습니다.

어제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에 들어갔고 코오롱 노동자들은 10년째 정리해고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10대 청소년들도 사회빈곤 속에 노동현장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동의 현장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은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이런 노동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연대>입니다.

고객이 아니라 나 또한 한사람의 노동자로 저 노동자들이 밀고 있는 카트를 함께 밀어야 하지 않을까요.

 

 

※ 상영관에 들어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관객의 90%는 젊은 여성이더군요.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선희의 아들 태영이가 아이돌 가수라는 것을.

잠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팬들이 영화의 흐름을 깨면... 정말 짜증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영화시작하고 처음으로 태영이가 나올 때만 작게 탄성을 지르더니 그 이후는 영화에 몰입해서 저 또한 좋은 관람시간이 되었습니다.

클라우드 편딩으로 좋은 영화가 개봉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고 예의도 잘 지켜주신 팬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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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북에 링크되어 있는 단편에니메이션을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무표정한 사람들.

기계적 행동들.

무기력.

 

그리고 반전.

 

 

 

 

 

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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