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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스무살이나 어린 애들이 반말로 '이거 해, 저거해' 시키더니…"


"스무살이나 어린 애들이 반말로 '이거 해, 저거해' 시키더니…"

[현장] 겨울이 더욱 추운 주연테크 해고 노동자들

기사입력 2011-01-18 오전 10:06:45

'주연테크'라는 컴퓨터 업체 공장에서 7년째 일하는 김정숙(가명) 씨는 두 아이의 엄마다. 처음 입사하던 2004년에 김 씨가 받은 연봉은 퇴직금을 포함해 1040만 원. 세금을 떼고 나면 한 달에 76만 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7년이 지난 지금 김 씨의 연봉은 퇴직금과 상여금을 포함해 1400만 원, 세금을 떼고 난 월급은 약 92만 원이다. 두 아이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임금이다.

6년째 일하는 주미영(가명) 씨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남편 수입만으로는 생활 유지가 안 돼서 일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나도 아이 학원비라도 벌려고 이곳에 입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 씨는 "생활비로 쓰기에도 월급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주 씨의 남편은 건축 일을 하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다. 건축 공사가 얼마 없는 겨울이 올 때마다 이들 내외의 살림은 궁핍해진다.

"젊은 관리자, 40~50대 여성 노동자들에게 '아줌마' 반말"

주연테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40~50대 여성들이다. 이들은 회사에 직접 고용됐음에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 년마다 계약을 연장해야 했다. 지난 2002년 주연테크에 입사한 곽은주 씨는 "40~50대 여성 노동자들은 말도 안 되는 근로조건 속에서 인간 이하의 모멸감을 느끼며 일해야 했다"고 말했다.

▲ 회사의 구조조정에 맞서다가 해고된 주연태크의 곽은주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툭하면 나가라고 했어요. 전체가 보는 앞에서 불량품을 낸 사람을 불러 놓고 나가라고 으름장을 놓았죠. 사람들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면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인간적인 모욕감도 많이 느꼈죠. 우리보다 20년씩 어린 관리자들이 '아줌마 이거 해, 저거 해" 하고 반말로 지시하기는 예사였거든요."

곽 씨는 "더 이상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2006년에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50여 명 중에 109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가 생기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1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하던 관행이 사라졌다. 회사는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툭하면 자른다"는 협박을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노동조합 설립 이후 회사의 탄압이 시작됐다. 노동조합을 탈퇴한 사람은 편안한 자리에 배치됐고, 회사에 쓴 소리를 한 조합원들은 힘든 자리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회사는 노조에서 탈퇴한 사람을 연봉이 500만 원 더 많은 자리로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급기야 2008년에는 회사가 12개월 치 임금을 주고 희망 퇴직자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났다. 결국 370명 중 2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2008년에 회사를 퇴직한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비정규직으로 여기저기를 철새처럼 오가거나, 아직도 새 일자리를 못 구해 전전한다는 것이 곽 씨의 설명이다.

이후 회사는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던 공장을 폐쇄했다. 대신 인천과 부천에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새 공장을 만들었다. 나머지 정규직 조합원들은 지금의 안양공장으로 일터를 옮겼지만 여전히 사측의 징계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먼지 쌓인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밥 먹는 설움

곽 씨도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다가 지난해 8월에 해고됐고, 지금은 안양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곽 씨를 만난 17일 기온은 영하 12도를 밑돌았다. 그는 "오늘같이 날씨가 추우면 옛날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가산디지털단지에 있을 때는 창문도 제대로 나지 않은 가건물을 공장으로 써서 겨울에는 너무 추웠고 여름에는 너무 더웠어요. 지금은 일할 때 전동 드라이버를 쓰지만 예전에는 일반 드라이버를 썼어요. 그런데 겨울이 올 때마다 추위에 손이 굳어서 드라이버를 돌릴 수가 없었거든요.

반면에 여름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죠. 특히 컴퓨터의 성능을 검사하는 사람은 여름에 더 힘들었어요.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열이 나는 기계예요. 컴퓨터를 오래 틀어놓고 불량이 있는지 검사해야 하는데, 한 명당 10대씩 50명이 컴퓨터를 틀면 작업장 전체가 컴퓨터 열 때문에 후끈했죠. 여름에는 숨도 못 쉴 지경이었어요."

게다가 창문이 제대로 나지 않은 공장에는 먼지가 쉴 새 없이 컴퓨터 부품에 쌓였다고 한다. 곽 씨는 "컴퓨터 불량 체크용 CD를 놔두면 조금만 지나도 CD 위에 먼지가 쌓인 게 보일 정도"였다며 "우리는 다들 비염을 기본적으로 달고 살았다"고 말했다.

식사 시간이 올 때마다 노동자들은 식판을 들고 먼지 쌓인 작업대에서 밥을 먹었다. 공장에는 식당이 없었다. 곽 씨는 "작업대에서 먹는 사람은 그나마 나았다"며 "어떤 사람은 작업대가 없어서 박스를 나르는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하루에 컴퓨터를 많게는 1400대까지 만들고도 월급 76만 원을 받았던 이들이 노동조합이 생긴 뒤 사측에 가장 먼저 요구한 사안은 바로 '냉난방시설 및 식당 갖추기, 관리자의 반말 금지'였다. 이 모든 일이 데스크톱 컴퓨터 분야에서 업계 2위를 기록하고 순매출 3000억, 순수익 50억을 돌파했던 회사에서 일어났다.

"서로 중고부품 안 가져가려고 피 튀기게 싸웠다"

주연테크는 '중고부품을 넣은 컴퓨터를 새것처럼 속여 팔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회사로도 유명하다. (☞관련 기사 :
"중고부품 넣은 컴퓨터 새것으로 속여 팔았다") 김정숙 씨는 "자재를 받는 오전 10시가 되면 다들 얼마 안 되는 새 자재를 받으려고 피 튀기게 싸웠다"고 회상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중고부품으로 컴퓨터를 만들면 불량품이 나올 확률이 높아요. 다 만들어 놓고 맨 마지막에 테스트해서 불량이라고 판정되면 그걸 분해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니까 일하는 양이 늘어나거든요. 일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새 부품을 받고 싶죠."

김 씨는 주연테크에 입사하기 전 일반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일했다. '끌어모은 손님들의 수로 실적을 매기는' 회사 시스템에 스트레스를 받아 직장을 옮겼던 김 씨는 공장에서 '동료들과 싸워야 하는' 또 다른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주미영 씨는 "불량이 하도 많이 나서 쉴 틈이 하나도 없었다"며 "출근하고 집에 갈 때까지 8시간 동안 하루 종일 서서 일하기는 예사였다"고 말했다. 손이 빠르지 않은 사람은 낙오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곽은주 씨는 "중고 부품을 쓰는 게 치욕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관리자는 매일 아침마다 아비규환이 되는 상태를 팔짱 끼고 멀리서 지켜봤다"며 "중고부품을 쓰라고 지시하는 쪽은 회사인데 왜 우리끼리 싸워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곽 씨는 '질릴 대로 질린'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 "구조조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잘린 게 억울해서라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은 다시 복직하는 것이다. 곽 씨는 "차라리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분담하자고 했으면 동의했을 것"이라며 "23년 동안 흑자였던 회사가 노동자들을 한 번에 다 내쫓으려 하니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짧은 인터뷰 시간을 아쉬워하면서도 노조 일정이 있어 가봐야 한다며 총총걸음에 농성장을 나섰다. 곽 씨와 함께 주연테크 안양공장을 나오자 담장에는 지난해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달아놓은 형형색색의 천조각이 빛이 바랜 채 달려 있었다. "이것들도 이제 다 낡았네요"라며 웃는 곽 씨의 모습에서 쓸쓸함이 배어 나왔다.

▲ 주연테크 안양공장 담장에 달린 천조각에 '민주노조 사수하자'라는 글귀가 보인다.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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