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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걷고 또 걷고...대리기사들은 '내가 쏠게' 안 해요"


안양군포의왕 비정규직센터 회원인 이상훈 회원의 기사가 오마이뉴스에 떴네요~
대리운전기사로, 노동조합을 만들며 싸우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우리 이상훈 회원님 홧팅~!!!







"걷고 또 걷고...대리기사들은 '내가 쏠게' 안 해요"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자다⑥] 대리운전기사 이상훈씨
구영식 (ysku) 기자

이동국(52)씨는 중국 칭다오에서 가구공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2005년 부도가 나자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귀국한 뒤 대리운전기사로 생활을 유지해왔다. 월세 30만 원짜리 옥탑방에서 살았던 그는 한달 300만 원을 벌어 일부를 중국에 송금하고 나머지는 빚을 갚아나갔다.

 

그런데 이씨는 지난 2009년 6월 26일 오후 10시께 경기도 구리시로 가는 별내 나들목 근처에서 숨졌다. 차주인 손님과 시비가 붙어 실랑이를 벌인 뒤 차주가 차를 후진하는 과정에서 이씨가 깔려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 것.

 

기러기 아빠였던 대리운전기사의 죽음 앞에 동료들뿐만 아니라 누리꾼들도 분노했다. 전국 7곳에 분향소가 마련됐고, 누리꾼들은 인터넷에는 '별내IC 대리기사 사망사고 추모카페'를 열고 청원운동을 벌였다. 특히 그의 죽음은 대리운전기사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용인 유림동 2만5000원 콜'을 찍지 않은 이유

 

  
10년 대리운전 경력을 가진 이상훈씨.
ⓒ 구영식
이상훈

'또다른 이동국'인 이상훈(51)씨를 만난 것은 18일 오후 9시 안양종합운동장 근처였다. 이씨는 약 10년 경력의 '전업 대리운전기사'다. 택시회사에서 근무했는데 노조활동을 세게 하다가 잘렸다. 이후 그가 생계수단으로 선택한 직업이 대리운전기사였다.

 

이씨는 날마나 오후 9시에 나와 이곳 종합운동장 근처에 차를 댄다. 그리고 그의 밥벌이 수단인 휴대폰 단말기를 안양종합운동장에 맞추어 놓는다. 그러면 반경 1.5km-3.5km의 '콜'(대리운전 호출)이 잡힌다. 콜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기다리는 일'은 대리운전기사의 첫 번째 운명이다. 

 

"늦어도 10분 안에는 콜을 요청한 손님에게 도착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반경 2km로 지역을 설정하고 이렇게 단말기를 보면서 기다리는 거죠. 거리에서 단말기를 계속 보고 있는 사람은 두 부류죠. 하나는 휴대폰으로 TV를 시청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십중팔구 대리운전기사예요."

 

대리운전기사들은 "콜은 받는 것이 아니라 찍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말기에 뜨는 모든 콜을 다 받는 게 아니라 자기한테 유리한 콜만 골라서 가기 때문이다. 이씨의 단말기에 '용인 유림동 2만5000원'이라고 적힌 콜이 떴다. 하지만 그는 콜을 찍지 않았다.

 

"콜비는 괜찮은데 지역이 별로예요. 용인 유림동에 가서 다시 콜을 잡을 확률이 거의 없어서 안 찍은 겁니다. 움직이기 좋은 지역이 떠야 콜을 찍어요. 최소한 다시 콜을 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도착지역에서 묻히는 수밖에 없죠." 

 

이씨가 뛰고 있는 지역은 주로 안양시내와 안산, 수원, 분당 등이다. 가끔 부천이나 인천으로 가는 콜도 뜨긴 하지만 찍지 않는다. 도착하는 지역에서 다시 받을 수 있는 콜, 즉 '빽콜'(back call)이 없기 때문이다. 

 

"술집 업소와 친해서 그곳에서 콜을 받으면 좋아요. 특히 골프장 콜을 받거나, 장거리 콜을 받으면 한방에 4~5만원을 벌 수 있죠. 그러면 느긋해져요. 그런데 '사당동 1만5000원' 이런 콜은 '똥콜'이에요. 거리가 먼 데도 저가로 후려치는 경우죠."

 

수도권 '콜비'(대리운전비)는 1만원에서 2만5000원 수준. 기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쌌다. 이씨가 안양에서 서울 강북지역에 가더라도 콜비는 2만5000원이다. 인천지역도 마찬가지다. 애주가들이 택시보다 대리운전을 선호하는 이유다.

 

"택시를 타고 술 먹으려 다닌다는 말은 10년 전 이야기예요. 자기 차 끌고 가서 술 마시고 대리운전기사를 불러 1만원~1만5000원 주고 집에 오는 게 더 싸죠. 음주운전단속에 걸릴 일도 없고…."

 

이씨는 "저는 신림동 1만5000원짜리나 분당 1만5000원짜리 콜도 안 가는데 이런 곳에 가는 사람들도 있다"며 "대리운전을 한 지 얼마 안된 사람들이 '정상가격이겠거니' 생각하며 이런 콜을 많이 받는다"고 귀띔했다. 

 

"첫 콜은 제 차 안에서 기다리지만, 그 다음부터는 밖에서 벌벌 떨면서 다녀야 해요. 은행 24시간 코너에 가면 대리운전기사들이 많이 모여 있어요. 거기서 추위와 바람을 피하는 거죠."

 

'50년락' 혹은 '100년락'을 아세요?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근한 지 1시간 만인 오후 10시 3분. 이씨가 드디어 '첫콜'을 찍었다. 10여분 걸리는 지역('안양2동')으로 콜비는 1만원. 차를 몰아서 콜을 신청한 첫 번째 손님에게 갔다. 여성운전자인 손님은 "수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회식을 했다"고 말했다.

 

- 대리운전기사를 자주 부르는 편인가요?

"운전을 한 지 11년 동안 오늘을 포함해 딱 두 번 대리운전기사를 불렀어요. 보통은 술을 먹어도 그냥 운전을 하죠. 그래도 한번도 음주운전 단속에 안 걸렸어요.(웃음) 그런데 오늘은 좀 많이 마셨고, 일단 집 근처에다 차를 세워놓고 동네 친구들과 2차를 하려고요. 택시를 타도 5000원 정도 나오거든요."

 

- 대리운전은 어떻게 신청했나요?

"식당에 명함이 수북이 쌓여 있어요. 식당 주인이 대리운전 전화번호를 알려주기도 하고요."

 

- '대리운전기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요?

"혹시 운전을 못할까 봐 걱정되죠. 제 차가 '오토'가 아니라 '스틱'이라 걱정돼요."

 

- 대리운전기사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투잡(two-job)하는 사람들 아닌가요?"

 

이씨는 "98년부터 구조조정을 하면서 사오정이나 오륙도니 하는 신조어가 생겨났다"며 "직장에서 안불러주니까 대리운전이라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잡족이 많고, 전업기사는 많이 없어졌어요. 나이 많은 사람도 의외로 많은데, 30대 중반이 가장 많아요. 그런데 그들은 자기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생계유지를 위해서 '잠깐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직업의식이 없죠."

 

고객을 태운 지 17분 만에 주택가인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씨가 고객한테서 1만 원을 건네받았다. 출근한 지 1시간 20여분 만에 '마수걸이'를 한 셈이다. 그리고 다시 콜을 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대리운전 중개업체가 출발지와 도착지를 속이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도착지가 '수원 ○○동'인데 그냥 '수원'이라고 입력하는 거예요. 그래서 '배차취소'를 할 경우 건당 500원의 벌금을 물리죠. 게다가 대리운전기사가 '왜 수원이라고 올렸냐?'고 항의하면 락(rock)를 걸기도 해요. 그러면 그 업체의 콜은 단말기에 안뜨죠."

 

문제가 있으면 항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씨도 그런 경우를 많이 겪었다. 그는 "한번 찍힌 기사는 '락'을 풀어주지 않고 계속 걸어놓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락을 걸어 배차를 제한하는 것은 일종의 해고예요. 심지어 '50년락이니 100년락이니 하는 말도 있어요. 수원에 사는 할아버지 대리운전기사는 락에 걸리자 업체에 가서 사장에게 작두를 휘두르다 감방에 갔죠. 이게 다 대리운전 제도화가 안돼 있으니까 일어나는 일이에요."

 

이씨는 이런 중개업체의 횡포를 "키보드 장난"이라고 불렀다. 중개업체가 키보드 하나로 대리운전기사를 통제한다는 얘기다.

 

  
기다리는 일은 대리운전기사의 첫 번째 운명이다. 끊임없이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콜을 기다려야 한다.
ⓒ 구영식
이상훈

 

180만 원 버는데 왜 실제 수입은 100만 원 안팎일까?

 

이 대목에서 대리운전 운영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시스템은 대리운전 중개업체와 인터넷프로그램 회사, 대리운전기사로 구성된다. '코리아'나 '1004', '친절' 등이 중개업체이고, '로지', '스피드', '콜마트', '콜마너', '콜차지', '아이콘' 등이 프로그램 회사에서 운영하는 대리운전 프로그램이다. 

 

먼저 고객이 중개업체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출발지-도착지'를 얘기하고 대리운전을 신청한다. 요금은 중개업체에서 먼저 제시하지만 협상이 가능하다. 이 과정이 끝나면 중개업체는 인터넷을 통해 관련내용을 대리운전 프로그램에 입력한다. 이렇게 입력된 내용은 이씨와 같은 대리운전기사들의 단말기에 올라온다. 대리운전기사들이 쓰는 말로 하면 '콜이 뜬 것'이다.

 

대리운전기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대리운전자보험료로 월 6만 원, 통신비로 월 1만5000원이 들어간다. 특히 단말기를 사용하는 비용인 통신비 1만5000원은 인터넷프로그램회사(8000원)와 대리운전 중개업체(7000원)가 나눠 갖는다. 대리운전기사들이 보통 프로그램을 두 개 이상 깔기 때문에 이 통신비는 3만 원으로 껑충 뛴다. 여기에다 최하 5만 원의 핸드폰 통화료가 추가된다. 결국 경상비용만 약 17만 원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나가는 비용이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리운전기사가 된 이후에는 건당 20%의 수수료를 중개업체에 줘야 한다. 대리운전기사가 단말기에서 '2만 원짜리 콜'을 찍는 순간 그의 인터넷계좌에서 4000원이 바로 중개업체로 들어간다. 수수료가 25%, 심지어 30%인 중개업체도 있다. 게다가 배차를 취소할 경우 건당 500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기본으로 한달에 보험료 6만 원, 핸드폰 통화료 5만 원, 통신비 3만 원을 낸다. 그리고 하루 콜을 6건 정도 찍는데, 콜비가 싼 시내주행이 많다. 건당 1만 원을 콜비로 받는다고 가정하면 그는 하루 6만 원의 수입을 올리게 된다. 당연히 1만2000원의 수수료가 중개업체로 빠져 나간다. 결국 실제 하루 수입은 4만8000원에 불과하다. 

 

이씨가 한달 내내 쉬지 않고 일할 경우 180만 원(30일 기준)을 벌 수 있다. 여기서 보험료와 통신비 등 경상비용(14만 원)과 수수료(36만 원)를 빼고 나면 한달 수입은 130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는 버스·택시·셔틀비, 간식비 등이 빠져 있기 때문에 수입은 100만 원 안팎에 머문다.

 

"언론보도를 보면 대리운전기사들이 한달에 200만 원, 300만 원 번다는 내용이 나와요. 실업자들이 그런 보도를 보고 '대리운전이나 한번 할까'하면서 엄청나게 들어오죠. 그런데 하루에 6콜 이상 찍기 어려워요. 물론 3만 원짜리나 3만5000원짜리만 집중적으로 몇 건 하면 한달에 꽤 벌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도 한번도 쉬지 않고 한달 내내 일했을 때 가능한 일이죠. 전체 대리운전기사 중에서 2~3%에 불과해요. 그 특별한 사람들은 오후 6시부터 첫콜을 찍고, 첫차를 타고 집에 가요. 중간에 셔틀도 절대 안타죠."

 

이씨는 "꾸준히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은 한달에 150만 원 정도, 죽을 둥 살 둥 하는 사람은 180만~200만 원 정도 번다"며 "저는 다른 다른 기사들과 달리 한달에 100만 원도 못벌고 허구헌날 70~80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13명의 대리운전기사와 셔틀, 그리고 '딩동소리' 

 

 
  
낙천적인 이씨는 "우리는 돈에만 꽂혀 살지 않는다"고 말했다.
ⓒ 구영식
이상훈

30여분을 걸어 도로쪽으로 나왔다. 안양3동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콜이 뜨기를 기다렸다. 기자의 시계는 오후 11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0분 정도 콜을 기다리다 없자 버스를 타고 첫콜을 찍은 곳으로 이동했다. 버스 안에서도 이씨는 계속 단말기를 들여다봤다.

 

"눈이 아주 피곤해요. 캄캄한 곳에서 좁은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대리운전기사들은 노안이 빨리 와요."

 

이씨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대리운전기사수는 4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루에 대리운전일을 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전국 20만명, 수도권 10만명 정도다.

 

첫콜을 찍은 곳으로 이동해 30분을 기다린 끝에 두 번째 콜을 찍었다. 이번에도 첫콜을 찍을 때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두 번째 손님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업가. 도착지는 수원 정자동, 콜비는 1만8000원. 그는 "1주일에 4번 정도 대리운전기사를 부른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대리운전업계를 좀 알고 있었다.

 

"최근에 (대리운전 중개업체를) 15XX에서 16OO으로 바꿨어요. 15XX이 좀 건방지더라고요. 그런데 기사님, 수원 정자동은 차가 적어 콜을 잡기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떡하죠? (수원 최대 유흥지인) 인계동까지 갔어야 하는데…."

 

두 번째 손님은 친절하게 이씨의 '빽콜'까지 걱정해주었다. 2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이씨에게 1만9000원을 건네주었다. 원래 받기로 한 콜비보다 1000원을 더 준 것이다. 이씨가 "지갑을 탈탈탈 털어서 주더라"며 웃었다.

 

이씨는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두 번째 콜의 도착지는 아파트 지역이라 빽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40분을 걸어 수일지하차도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셔틀'을 타야 한다. '셔틀'은 대리운전기사들만을 태우는 봉고차다. 

 

"사실 이것도 불법인데, 몇개 회사들이 노선별로 셔틀을 운행해요. 30분마다 운행하기 때문에 대리운전기사들은 셔틀노선을 꿰고 있어야 해요. 거리에 따라서 1000원~3000원의 요금을 받아요. 콜비 1만9000원 받았는데 택시타고 다시 안양에 갈 수는 없잖아요? 셔틀은 3000원만 내면 되는데…. 새벽 4시 30분까지 운행해요. 대리운전기사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을 많아요.(웃음)"

 

수일지하보도에 도착한 지 20여분 후에 셔틀이 도착했다. 셔틀 안에는 이씨를 포함해 13명의 대리운전기사들이 타고 있었다. 30대와 40대가 가장 많아 보였다. 모두 단말기만 들여다보고 있다. 오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셔틀 안에는 '딩동' 소리(콜이 뜰 때 나는 소리)만 가득했다.

 

이씨도 셔틀 안에서 콜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안양에 들어온 이후 콜을 하나 찍었는데 고객이 취소했다.

 

"손님이 몇분 정도 걸리냐고 해서 '7~8분이면 된다'고 했더니, '그럼 됐어요'라고 하네요. 그래서 콜센터에 보고하고 (벌금부과 대상에서) 빼달라고 했어요. 이런 경우 콜센터에서 '왜 7~8분 걸린다고 했느냐?'고 따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그 콜을 제가 찍어서 가야 콜센터도 수수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대리운전은 운전하는 게 아니라 걷는 직업?

 

오전 1시 25분께 다시 두 번째 콜을 찍었던 곳으로 돌아왔다. 이씨의 차안에서 콜을 기다리는 동안 기자의 눈꺼풀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배도 고파왔다.

 

- 이 기사님, 설렁탕 한 그릇 먹고 콜 받으면 안될까요?

"우리는 콜을 받는 중에는 식사를 안해요. 언제 좋은 콜이 뜰지 모르기 때문에요. 식사는 일이 다 끝난 다음에 하죠. 졸아도 안돼요. 저는 올빼미 체질입니다."

 

다른 대리운전기사들에 비해 설렁설렁 움직이는 이씨지만 기자가 보기에 지독하리만치 일에는 철저했다. 그가 결국 기자에게 한방 먹였다.

 

"돈, 돈 하는 대리운전기사를 취재했어야 하는데, 구 기자는 아주 편하게 취재하는 것 아니에요?(웃음)"

 

대리운전의 '피크타임(peak time)'은 오후 11시 30분부터 오전 1시 30분까지다. 실제로 이씨의 단말기에 뜨는 '수도권 총콜수'가 400여건에서 200여건으로 크게 줄어 있었다. 그는 "12시만 넘어서면 인내력 싸움"이라고 말했다. 특히 콜수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오전 3시대에 찍는 콜을 '보너스콜'이라 부른다.

 

오전 2시가 넘어 세 번째 콜을 찍었다. 이번 손님은 20대 헬스 트레이너다. 도착지는 분당, 콜비는 2만 원. 그가 이씨에게 "단골이 있죠?"라고 물었다.

 

"최근에 손님을 한분 태웠어요. 그분이 저녁에 술을 먹은 뒤 가끔 강원랜드에 가서 카지노를 한다고 해요. 보통 택시를 이용하는데, 35만 원을 준다고 얘기해요. 그래서 제가 '대리운전기사를 쓰면 25만 원만 주면 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연락한다면서 명함을 가져가더라고요."

 

두 사람은 '십자인대 파열'을 두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세 번째 콜을 찍기 전부터 눈꺼풀이 무너져가던 기자는 결국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졸고 말았다. 깨어보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콜비 2만 원을 받은 이씨가 셔틀을 탈 수 있는 범계역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우리가 걸어간 인도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 언 상태였다. 춥고, 졸리고, 배고픈 기자는 이씨의 발뒤굼치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걸었다.

 

"대리운전 10년 하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리운전이 운전하는 직업이 아니라 계속 걷는 직업이라고요. 기다리고, 운전하고, 걷고…."

 

약 50분을 걸어 셔틀을 탈 수 있는 범계역에 도착했다. 오전 3시 20분. 셔틀 안에는 '보너스콜'(오전 3시대에 찍는 콜을 이르는 용어)을 노리는 대리운전기사들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이씨의 단말기에 뜨는 '수도권 총콜수'는 이미 100건 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였다.

 

이날 7시간 동안 대리운전을 뛰어 이씨가 쥔 수입은 4만9000원(팁으로 준 1000원 포함)에 불과했다. 하지만 수수료 9600원(4만8000원의 20%)를 빼면 4만 원도 안되는 수입이다. 그래도 낙천적인 그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저와 아내는 돈에만 꽂혀 살지는 않아요. 오히려 돈 많은 사람들이 돈 걱정하고 살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커피숍에는 못들어가요. 대리운전기사들은 돈을 배포있게 못써요. 대리운전기사들 사이에는 '내가 쏠게'가 없어요.(웃음)"

 

  
대리운전기사는 밤새 기다리고, 운전하고, 걸어야 하는 직업이다.
ⓒ 구영식
이상훈

2011.01.22 17:20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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