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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그녀가 인생의 절반을 회사와 싸워 온 이유




 

곽은주 금속노조 주연테크지회장 ⓒ양지웅 기자



여기 인생의 절반을 회사와 싸워 온 사람이 있다. 곽은주(38) 금속노조 주연테크지회 지회장, 그녀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18년간을 회사와 싸워 왔다.

곽 지회장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1994년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바로 구로공단에 있던 ‘대성전기’라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공고출신도 아닌 그녀가 ‘대성전기’ 생산직에 입사를 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가 권해서 우연히 접했던 '전태일 평전'이 정신적 충격을 주었기 때문.

“집안 형편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기도 했구요. 평전을 읽어보고 막연하게나마 ‘전태일처럼 살아보고 싶다’ ‘나는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곽 지회장이 ‘대성전기’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노조가 생겼다. 당시 회사 언니들은 그녀에게 노조 교육선전부장을 제안했다. 그녀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전태일 평전'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아직은 경험이 부족했던 그녀에게 노조 간부활동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사람과의 관계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지요. 어린 나이에 간부를 하게 돼서 무척 힘들었어요. 그래도 당시 경험이 아주 많이 남아있죠. 지금 이 길을 갈 수 있게 만들어준 전환점이랄까요.”

회사의 노조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 사측은 노조를 깨기 위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조합원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으로 많은 조합원들이 노조를 떠나갔다. 이에 맞서 노조는 파업도 벌이고 별의별 투쟁을 다해 봤다. 무려 3년을 싸웠다. 결국 회사는 위장폐업을 하고 공장을 안산으로 옮겨 버렸다.

잠시이긴 하나 곽 지회장은 ‘마마전기’라는 회사에 다니며 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들의 체불임금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다.

직장을 구하고 있던 곽 지회장은 우연히 컴퓨터 생산 전문업체인 ‘주연테크’ 구인광고를 발견했다. 그녀가 ‘주연테크’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11월이었다.

월급은 정말이지 쥐꼬리만 했다. 4대보험을 포함해 72만원이 전부였다. 교통비, 상여금, 근속수당, 연차수당 등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심지어 컴퓨터 부품이 없어지면 직원들의 월급에서 공제했다.

“완성된 컴퓨터에서 없는 부품이 있으면 월급에서 공제가 돼요. 월급에서 20만원 넘게 공제된 사람도 봤어요. 직원을 도둑놈같이 취급하는데서 너무 심한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생산현장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반말은 기본이었다. 회사 관리자들은 자기들보다 나이가 무려 스무 살이나 많은 아주머니들에게도 반말을 ‘찍찍’ 했다.

“2004년 매출에 비해 2005년 매출이 급상승해 매출 3000억원을 달성했어요. 그런데 2006년 임금은 고작 2% 밖에 안 올랐어요. 직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회사가 이렇게 잘나가는데 2%가 뭐냐’는 불만이 싹 텄죠.”

마침 노조를 만들어 보자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던 때였고, 회사 전반적으로 턱없이 낮은 임금인상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져 갔다.

2006년 7월 7일 회사 창립기념일을 맞아 ‘노조 결성 보고대회’를 열고 사측에 교섭을 요청했다. 당시 회사는 코스피 상장을 앞두고 심사 중이어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교섭은 순조롭게 단 한 달 반 만에 타결됐다.

그러나 코스피 상장이 되자마자 사측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분파업을 벌일 때 남성 조합원들이 연대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회사 밖으로 나간 사이 사측의 생산본부장이 구사대를 동원해 '밟아! 죽여!'라고 소리 지르며 여성조합원들을 폭행하는 일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2008년 7월 ‘주연테크’는 임단협 기간에 일방적으로 전사업장 공장이전 및 희망퇴직자 공고를 게시했다.

“정확히 어디로 갈지 정해놓지도 않고 공장이전 발표를 했어요.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수도권 도시 중 한곳'이라고 설명만 하고 공장이전 발표를 한다는 건 노조를 말살하겠다는 거죠.”

곽 지회장과 조합원들은 공장이전 부지를 노사합의로 결정한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나 회사는 곧바로 뒤통수를 쳤다.

“교섭을 하려고 찾아 갔는데 사측 직원들과 옷을 잡아끌기도 하고 가벼운 몸싸움이 있었어요. 5일간이나 회사 직원들과 함께 있었지요. 그런데 사측은 우리를 감금 폭행죄로 고소했어요. 우리를 폭도 취급해서 너무 억울했어요.”

2010년 7월, 법원은 곽 지회장과 부지회장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6월의 판결을 내렸다. 결국 곽 지회장과 부지회장은 회사의 취업규칙에 따라 해고되고 말았다.

현재 노조는 회사를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했고 국민신문고 쪽에도 서면으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주연테크’가 컴퓨터를 생산하면서 중고부품을 쓴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회사가 컴퓨터를 만들면서 중고 부품을 써왔어요. 노조를 만들고 나서 회사에 계속 문제제기를 했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회사는 오히려 ‘우리가 해고돼서 앙심을 품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는 말만 하고 있어요.”

처음 노조를 만들었을 때 107명이었던 조합원들은 현재 절반 이상이 노조를 탈퇴했다.

“우리 일터 지키려고 했는데 잘 싸우지 못했던 게 많이 후회가 돼요. 회사가 정상적으로 경영하게끔 문제제기하면서 투쟁했더라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탄압받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거예요.”

회사는 아직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칠 법도 한데 곽 지회장의 입에서는 ‘힘들다’는 말이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곽 지회장은 부지회장과 함께 현장에 남아있는 조합원들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회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투쟁은 우리가 끝내는 게 아니라 저들이 항복해야 끝나는 거지요.”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한수 기자 hskim@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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