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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목소리] 우릴 보며 코를 막지만…“그래도 누군가 똥은 치워야죠”


[낮은목소리] 우릴 보며 코를 막지만…“그래도 누군가 똥은 치워야죠”

정화조 청소 노동자들의 애환

 

» 일러스트레이션/유아영
폐 찌르는 ‘노란’ 유독가스에
생명 위협 느껴가며 일하는데
방독면·안전요원도 없는 현실

“○○네 아버지는 똥 퍼요~.”

어린 시절, 동네에서 미움 받는 또래 친구들을 놀릴 때 부르던 노래다. 그 뒤 가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하루에 3천원 수입 잡죠. 천원은 밥 사먹고, 천원은 목욕하고, 천원은 저금하고, 그래도 ○○네 아버지는 똥 퍼요~.” 이 가사에서 보다시피, 분뇨를 처리하는 ‘정화조 청소 노동자’(정화노동자)들은 아이들에게도 놀림감이었다.

연암 박지원의 <예덕선생전>은 마을의 분뇨를 처리하는 엄행수를 ‘예덕선생’이라 칭송하며 소재로 삼은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선귤자는 “어떻게 똥을 푸는 미천한 자와 벗으로 지내냐”며 스승을 떠나겠다는 제자 자목에게 “그의 하는 일은 불결하지만 그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더러우나 의를 지킴은 꿋꿋하니 엄행수를 보고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랴”라고 일침을 놓는다.

21세기에도 예덕선생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연암이 없는 탓일까. 그들은 여전히 여론의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대변하는 노동조합도 겨우 부산·창원·광주 3곳에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광주·창원은 와해 위기에 처해 있다. 민주노총 부산지역일반노조에서 겨우 40여명의 노조원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낮은 목소리>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21세기 예덕선생을 만나러. 연암의 말대로 그들에겐 악취가 아닌 향기가 났다. 정작 똥냄새가 나는 건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아닐까. 기사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따르릉.”

새벽 5시. 스프링처럼 몸을 튕겨 일어난다. 아내는 자고 있다. 부엌으로 가 어제 저녁에 남은 김칫국을 데운다. 냉장고에서 랩에 싸여 있는 찬밥을 덜어내 쓱쓱 말아 아침을 해결한다. 대충 씻고 집을 나선다.

오전 6시30분. 회사에 도착한다. 회사 입구 자판기 커피를 난로 삼아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휴게실 같은 건 없다. 회사 중간관리자가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곧이어 오늘 일정이 나왔다.

‘젠장.’

가정집이다. 대학교나 고층 빌딩처럼 몇십t 분량의 정화조가 있는 곳은 3군데 정도만 돌면 하루 일정이 끝난다. 가정집은 다르다. 1t부터 3t까지 정화조 용량이 다양하다. 많게는 하루에 20군데를 넘게 돈다. 아직까지 산동네가 많은 부산에서 가정집의 분뇨를 처리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분뇨처리차에서 정화조까지 잇는 호스는 무게가 1m에 10㎏ 정도 나간다. 산동네 가정집은 보통 100m에서 150m 이상 호스를 끌고 올라간다. 1t 이상 되는 호스를 질질 끌고 가는 거다.

작업은 2인1조다. 회사에는 5t, 8t ,16t 차가 총 여섯 대 있다. 한 차에 2명씩 탄다. 그러니까 현장노동자는 12명이다. 여유 인력은 없다. 외국은 안전요원이 미리 가스 노출 여부 등 안전상황을 점검한 뒤 작업요원을 투입한다던데 우리는 그런 것도 없다. 일단 정화조 뚜껑을 열고 본다. 정화조 뚜껑을 열 때 나오는 가스를 본 적 있나? 노랗다. 정말로 노란색이 보인다. 메탄과 암모니아가 섞인 가스는 비강을 타고 바로 폐를 찌른다. 방독면? 그런 거 없다.

가스만 나오는 게 아니다. 모기는 양반이다. 정체불명의 벌레들이 한꺼번에 날아든다. 입, 코, 눈 마음껏 공격한다. 그걸 참아야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호스 꽂아 놓고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거 아냐?”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표현이 딱 맞다. 인간의 똥은 싸고 나면 경화현상이 일어난다. 딱딱해지면서 굳는다는 거다. 딱딱하게 굳은 똥은 정화조 위를 시멘트처럼 덮고 있다. 그 안은 액체다. 쇠꼬챙이로 돌덩이 같은 똥을 계속 깨면서 호스를 휘저어 주어야 한다. 그 똥이 깨질 때마나 나는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머리가 띵하고 정신이 아찔해진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사람 태반이 이 냄새 때문에 관둔다. 왜 아직까지 하냐고? 애들은 가르쳐야 할 거 아닌가. 우리는 정말 목숨 걸고 일하는 거다.

급여는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지자체는 직접 고용 회피하고
용역업체 임금은 최저생계비

380볼트 수중모터를 정화조 안에 집어넣는다. 모터가 돌아가면 똥을 빨아들인다. 호스를 그냥 두는 게 아니라 계속 물을 부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수도꼭지에 손이라도 대려고 하면 주부들은 기겁을 한다. “손대지 마세요!” 고함을 지른다.

가정집 정화조는 처리하는 데 20분 정도 걸린다. 2t을 기준으로 요금 3만3천원을 받는다. 돈을 줄 때, 그들은 우리를 벌레 보듯 한다. 우리가 가끔 바퀴벌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얼굴도 안 쳐다본다.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그린다. 엄지와 검지 손톱 끝에 지폐를 끼워 넣는다. 우리와 손이 닿기 싫다는 거다. 자기들이 싼 똥을 치워주는 우리에게 너무한 거 아닌가. 고약한 똥냄새보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더 힘들다.

가정집을 담당하는 날은 고되다. 20군데를 돌면 파김치가 된다. 회사 차고지로 돌아오면 오후 4시 정도 된다. 샤워실은 없다. 노조가 있는 다른 회사는 샤워실도 만들어줬다고 하던데, 아직까지 노조가 없는 우리 회사는 복지시설이라고는 전혀 없다. 심지어 근무복도 없다. 작년에 대통령 하사품이라며 ‘돕바’(원래는 반코트를 칭하는 일본말이지만 흔히 무릎 위까지 덮는 패딩잠바를 말함) 한 벌 나온 게 전부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탄다. 평소엔 걸어 다닌다. 버스만 타면 사람들이 고개부터 돌린다. 내 몸에서 나는 가스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게 싫어서 걷는다. 오늘은 너무 힘들어 버스를 탔다. 앞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고 창문을 끝까지 열어 놓는다. 나는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자꾸 옷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

계속해서 이런 가스를 맡다 보디 어딘가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하지만 정작 병에 걸리면 다들 회사를 안 나와 버리니 산재처리가 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지금 회사 동료 가운데 3명이 위암에 걸려서 회사를 관뒀다. 나도 걱정이 된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집에 도착하면 욕실로 먼저 향한다. 남들보다 비누질 한번이라도 더 한다. 혹시라도 내 집에서 그런 냄새를 풍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집에서 구체적으로 내 일에 대해 말한 적은 없다. 다른 가장들은 밥 먹으면서 직장에서 일어난 일도 말하곤 한다던데, 꿈도 못 꾼다. 아이들도 내색은 안 하지만 창피해할 게 분명하다. 아버지가 똥을 푼다는데, 좋아할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이해한다. 나도 어디서 내가 똥을 푼다는 걸 밝히기 싫다.

나는 올해로 경력 7년5개월차다. 처음엔 계약직이었다가 6년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줬다. 이쪽 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다. 나도 원래는 낚시 기구를 파는 가게를 했다. 사업이 망하고 전전긍긍하던 터에 친구가 소개를 해줘 흘러들어왔다. 거의 나처럼 소개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더러운 일을 하니 급여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세금을 떼고 한달 165만원이 내 급여다. 7년5개월 동안 급여가 12만원 올랐다. 정년은 규정상 61살인데, 퇴사했다가 다시 재입사를 한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엔 70살 노인도 있다. 54살인 내가 어린 축에 들어갈 정도다.

직장에서도 서로 얘기를 잘 안 한다. 서로 이런 일 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거다. 퇴근하면 뿔뿔이 흩어진다.

“우리도 우리 일이 좋지 않다
그래도 당신들 똥 치우는 건데
멸시의 눈길은 거두어 달라”

그나마 환경미화원들은 지자체에서 직접 고용을 해서 생활도 안정됐고 사회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분뇨처리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고용하기보다는 용역을 준다. 피해는 정화노동자만 보는 게 아니다. 용역을 주다 보니 분뇨처리 비용도 과다 책정됐다. 지자체에서 직접 고용하면 적어도 30% 이상은 싸게 받을 수 있다.

선배들 말을 들어보면, 과거엔 분뇨처리사업이 비리의 온상이었단다. 할당량이 구청에서 내려오면 무조건 그것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모자란 만큼 물을 채워 넣었다고 한다. 처리 용량을 속이기 위해 정화조 윗부분만 수거하는 이른바 ‘대가리 치기’를 하고 나머지는 물을 채운 것이다. ‘부산에서 처리되는 분뇨는 낙동강 물’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지금도 가정집 분뇨 처리하고 요금을 받을 때면 미안할 때가 있다. 사실 2t짜리 정화조를 처리해도 2t이 다 안 나온다. 1.5t 정도가 나온다. 그래도 2t의 처리 비용을 징수한다. 이게 다 분뇨처리를 개인 사업자가 하청을 받아 하기 때문에 나온 폐단이다.

우리가 사람대접 못 받는 건 이해한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그런데 사람대접 못 받으면 그만큼의 경제적 대우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겨우 최저생계비를 넘게 급여를 주면서 사람대접도 못 받는다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가족에게도 부끄럽고, 사회·회사에서도 멸시당하는 우리들, 어디에다 하소연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치우는 건 다름 아닌 당신들이 싸놓은 ‘똥’이다.

부산/글·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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