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시급도 5천원인데 4700원으로 아비노릇 하라고?"
삼화고속 파업 열흘째…"광역버스 준공영제 도입해야"
새벽 3시 반에 일어난다. 4시에 집을 나온다. 첫차는 5시다. 버스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인천에서 서울역으로, 강남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출근길에는 45인승 버스에 많게는 90명까지 들어찬다. "콩나물도 그런 콩나물이 없어요." 버스기사들의 한숨이 이어진다.
버스는 올림픽대로를 접어든다. 승객들은 서서 간다. 시속 80km. 위태위태하다. 회사에서 "미어터지지 않을 정도로만" 승객들을 채워 넣기 때문이란다. 사정은 손님이 가장 없다는 점심시간에도 마찬가지다. "우리 버스 1시, 2시쯤에 타보세요. 어느 버스회사가 그렇게 손님을 많이 싣고 다니나."
버스기사들이 5분 만에 밥 먹는 이유
밥을 먹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어진 시간은 20여 분. 차고지에는 주차장이 없다. 주위에 차를 대고 식당까지 걸어가는 데 왕복 10분이다. 종점인 차고지에 손님이 미리 탈 수 있도록 5분 전에 다시 버스를 대놓아야 한다. 남은 식사 시간은 5분. 우동그릇에 국과 밥을 말아 넣어 후루룩 마신다. "3분 만에도 먹어요." 누군가 옆에서 거들었다. 파업 열흘째에 접어든 삼화고속 이야기다.
삼화고속에서 4년간 일했다는 김정수(가명‧47) 씨는 삼화고속 노조가 전면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 기사들이 자체 태업을 벌이면서 버스가 '정상 운행'됐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신호위반도 하고 위험 운전했는데, 태업을 하니 앞차도 기다리고 교통법규도 준수하게 됐어요. 밥도 자체적으로 30분 동안 먹고…."
버스기사들이 일하는 시간이 빡빡한 이유에 대해 삼화고속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인천시에는 하루 30대를 5회전해 150회를 운행하겠다고 허가받아놓고, 실제로는 22대를 7회전한다"며 "이렇게 되면 회사는 원가를 절감할지 모르지만, 운행을 두 번 더하면 기사는 5~6시간을 더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에는 운행 버스를 15~17대로 줄여서 일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진다"며 "운수업계에서 하는 관행을 시가 알면서도 묵인한다"고 주장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손님들에게 돌아온다고 했다. 5년간 삼화고속에서 일했다던 한 버스기사는 "몸이 노곤하면 졸지 않을 재간이 없다"면서 "기사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졸음운전 한 번 안 해본 사람 있나"라고 반문했다. "하루에 쉬는 시간을 딱 30분만 주면 그 시간에 눈 붙이면 피로가 풀리거든요. 밥 먹는 시간도 50분 정도는 있었으면 하고요."
ⓒ프레시안(김윤나영) |
"대학생도 시급 5000원인데…아비노릇 못 해"
삼화고속 노조는 하루 근무시간을 21시간에서 18시간으로 줄이고 최저임금 수준인 시급 4727원을 5700원으로 20.6%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생 자녀 둘을 키운다는 한 조합원은 "대학생도 잘하면 아르바이트에서 시급 5000원도 받을 수 있는데, 4727원 가지고는 아비노릇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인천 시내버스 평균 시급이 6800원"이라며 "4700원과 6800원의 중간선인 5700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화고속은 파업에 맞서 곧바로 직장 폐쇄를 단행했었다. 인천시의 압박으로 사측은 지난 18일에 열린 파업 이후 첫 교섭에 참여했지만, "시급 3.5%(160원) 인상안은 기존 2.5% 인상안에서 이미 한 차례 수정한 것이므로 또 바꿀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노사는 견해차이만 확인하고 20일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는 160원을 올리는 대신 수당 두 개를 기본급에서 제외하려 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월급 전체 총액에서 4만5000원이 마이너스로 오히려 임금이 깎인다"고 주장했다. 상여금이 기본급을 기준으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삼화고속의 임금은 10년째 동결된 상태다.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2010년 사업체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운수업 전체 평균임금은 238만 원이고, 300인 이상 업체인 경우 335만 원이다. 삼화고속은 버스기사 600여 명을 고용해 인천~서울 광역버스 노선의 70% 이상을 맡고 있는 대형 사업장이다. 삼화고속 버스기사들의 월급은 초과‧야간수당을 합쳐서 178만 원가량이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은 재정적자라고 하지만, 재정적자 근거에는 인천시로부터 받는 재정지원금 70억 원이 빠져있다"고 설명했다. 삼화고속은 연간 수도권 통합 환승 할인 재정금 39억 원(2010년도 기준) 경유차량 대상 유가 지원금 28억 원 등 총 70억 원을 인천시로부터 보조받고 있다.
광역버스 준공영제, 송영길 인천시장 공약
삼화고속 버스기사들 사이에서는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인천 시내버스와 근로조건에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높다. 노조 관계자는 "개인회사가 운영하다보니 삼화고속 기사들은 마을버스나 시내버스보다 노동 강도는 더 세면서 임금은 더 적다"며 "시내버스는 시에서 운영하니 근로기준법도 지킨다"고 지적했다.
"준공영제를 하면 회사가 가져가는 초과 이윤이 더 적어지죠. 이윤, 인건비, 정비비 등 원가가 투명하게 드러나잖아요. 우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려면 원래 11일을 일해야 하는데 15일(하루 20~21시간 노동, 익일 휴무)을 일해요. 초과 수당도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것보다 덜 줍니다. 그런데 시내버스 기사들은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데 돈은 우리보다 70만 원을 더 받아요."
ⓒ프레시안(김윤나영) |
준공영제는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에게도 좋다는 지적도 일었다. 수익성 논리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버스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손님이 없는 노선도 적자를 감수하고 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화고속의 운임은 2500원(카드 2200원)으로 다른 광역버스보다 높은 편이다. 광역버스 준공영제는 송영길 인천시장의 공약이기도 했다.
삼화고속은 수익성 악화를 근거로 광역버스 1301번(송도~서울역)·1601번(용현동~서울역)·2300번(연수동~종로)·9902번(연수동~대방동)의 노선 폐지를 인천시에 신청했다. 21년간 삼화고속에서 일했다는 황명길(가명) 씨는 "회사는 황금 노선만 쥐고 적자 노선은 없애려고 하지만, 그러면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은 불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현재 인천시내 모든 시내버스가 준공영제로 운행되고 있지만, 인천시 재정여건상 광역버스까지 준공영제를 실시할 여력은 없다"고 말했다. 삼화고속이 반납한 광역버스 노선에 대해서는 "파업 훨씬 전부터 삼화고속 측에서 노선 반납을 신청했었는데, 노선 설계를 새로 해서 다른 사업자를 뽑아서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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