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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노동소식

살아내려온 김진숙, 영도 조선소는 눈물 바다


살아내려온 김진숙, 영도 조선소는 눈물 바다
309일의 고공농성, 김주익이 목 맨 그 자리 김진숙은 살아내려왔다
[0호] 2011년 11월 10일 (목) 최훈길·박새미 기자 chamnamu@mediatoday.co.kr

오후 3시 16분. 흰색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은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고공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500여 명의 조합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활짝 웃었다. 김 지도위원은 “투쟁”이라고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조합원들은 박수 갈채를 보냈다.

지난 1월부터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농성을 시작한지 309일째 되는 날, 노사 간에 정리해고 협상 타결로 김 지도위원은 농성을 끝맺게 됐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마이크를 들고 조합원들에게 “동지 여러분 반갑다. 고생 많으셨다”고 말한 뒤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10일 오후 3시 20분경 농성을 풀고 지상으로 내려오며 조합원들을 향해 두 손을 들어 만세를 부른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진숙 위원은 지난 2003년 당시 투쟁을 하다 85크레인에서 목숨을 끊은 고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을 언급하며, “309일동안 한시도 잊지 못할 이름은 김주익이었다”며 “주익씨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많은 사람들이 ‘309일을 어떻게 버텼느냐’고 얘기하지만 그 (정리해고의)아픔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김진숙 위원은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해 “이제 해고자 비해고자의 구분이 없어졌다”며 “100% 만족할만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용기를 북돋았다. 그는 “오늘 이 시간 후로 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앙금이 있었다면 그것도 깨끗이 씻고 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진숙 위원은 “오늘부터 새로운 시작과 출발”이라며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고맙다”라고 조합원들에게 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농성을 해온 해고 조합원 3명도 “정말 고맙다”, “여러분들이 하나가 됐다”, “평생 일할 수 있게 하겠다”, “사랑한다”, “고생했다”며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조합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들과 가족, 지지자들이 '파업투쟁가'와 '금속노조가'를 부르며 김진숙 지도위원을 맞이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 지도위원과 함께 85크레인에서 100일이 넘게 함께 고공농성을 하다가 내려온 네 명의 한진중공업 조합원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들이 인사를 지켜보는 곳곳에서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 조합원들이 곳곳에 보였고, 백기완 선생 등 멀리서 김진숙 위원을 응원하러 온 시민들도 보였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들을 바라보며 “백기완 선생님은 그동안 몸도 불편하신데 5차까지 희망버스에 오셨다”며 “한진중공업을 살린 게 희망버스”라고 화답했다. 이어 그는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앞으로 지금까지 해왔듯이 자랑스런 민주노조의 깃발을 들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도 “희망버스는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정리해고 문제를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바라보게 했다”며 “우리가 이제 희망버스가 되자”고 화답했다. 김영훈 위원장은 “한진 스머프들이 우리보다 더 약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아픔을 치유해 비정규직, 정리해고를 해결하자”며 “할 일이 너무 많다. 바로 우리가 청년과 함께해야 하고 약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20여 분간 조합원들에게 소회를 밝히는 시간을 끝낸 뒤, 김 지도위원은 꽃다발을 들고 한진중공업 정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김 지도위원이 한걸음씩 발을 뗄 때마다, 취재진 수십여 명과 조합원들 수백여 명이 따라올 정도로 열띤 분위기였다. 김 지도위원은 “이렇게 나가면 언제 보나. 다 보고 가야지”라며 조합원들을 일일이 만나 악수를 했고, 조합원들은 “고생 많으셨다”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과 조합원들 모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정문으로 향하는 길 양쪽에 늘어선 조합원들과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그 뒤로 김 지도위원이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펼쳤던 85크레인이 보인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러다 김 지도위원은 한 여성 조합원에게 다가가 부둥켜 안았고, 김 지도위원과 이 조합원 모두 이내 눈물이 맺였다. 김 지도위원은 “두 명 남은 여성 조합원이었는데, 회사는 두 명 다 해고했다”고 말했다. 2001년 입사한 두 명의 생산직 여성 노동자를 올해 초 회사가 해고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문아무개씨(45)는 “그동안 크레인에 식사를 갖다 주면서 김 지도위원을 만났는데 김 지도위원을 여기서 보게 되니까 기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고 말했다.

정문으로 향하는 10여 분간 조합원들은 곳곳에서 “우리가 주인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철회하라”라고 외쳤고, 박수 갈채를 보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들과 악수를 하거나 일부와 부둥켜 안았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농성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한진중공업 사옥에서 잠시 가족과 만났고, 3시 56분에 사옥 출입문 앞에서 시민들과 만났다.

시민들 곳곳에서 “사랑합니다”라는 응원의 목소리와 함께 박수 갈채와 취재진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정동영 권영길 이정희 조승수 의원을 비롯해 배우 김여진씨 등 수백여 명이 김진숙 지도위원을 반겼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앰뷸런스에 타기 전, 한진중공업 정문에서 배우 김여진 씨와 민주당 정동영 의원 등 그간 고공농성에 힘을 보탰던 인사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한진중공업 정문앞에서 가족대책위원회와 지지자, 조합원들을 만나 김진숙 지도위원이 자주 말하던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이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가족대책위의 가족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을 보낸 후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빠 이제 공장 갈 수 있어?'라고 묻기도 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진숙 위원은 “저는 살아 내려올 줄 알았다. 여러분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며 “여러분들이 저희들을 살려주셨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희망버스 기획단 관계자는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어려운 조건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킨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았고 연대할 수 있었다”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웃으면서 함께 투쟁”이라고 마지막 말을 한 뒤, 준비된 앰블런스로 걸어갔다. 앰블런스는 4시 20분께 동아대 병원으로 향했고 시민들은 앰블런스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