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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열사 44주기

오늘 <카트>가 개봉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바대로 카트는 2007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형마트 비정규직 투쟁을 다룬 영화입니다.

아직도 수많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노동을 하며 살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실화이니만큼 결과를 알기에 헤피앤딩일 수 없는 영화지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영화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겠지요.

 

영화가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담담합니다.

흔히 생각할만한.... 노동조합을 만들어 뭔가 당당해지고 뭔가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도 없습니다.

너무나 현실적이게도...

노동조합을 만들도고 개무시를 당하는 이 땅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로 몽치면 목소리라도 낼 수 있겠다 싶었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여성노동자로서 생계까지 책임지는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복직해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장면

손배가압류를 비롯한 자본측의 온갖 편법적 노동조합 파괴시나리오는 정말 잔인할 정도로

우리 사회 노동문제 속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7년 이랜드, 홈에버만이 아니라 뉴코아도 파업을 했습니다.

뉴코아는 정규직이었고 이미 노동조합이 있었습니다.

당시 뉴코아가 이랜드로 넘어가는 과정이었고 이랜드 비정규직의 투쟁에 뉴코아 노동조합은

노동자적 연대로 파업투쟁에 돌입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투쟁을 이랜드 뉴코아 투쟁이라고 불렀죠.

 

영화 속에서는 더마트 정규직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으로 묘사된 듯합니다.

 

 

파업이 끝나고 한참 뒤.

당시 파업에 참여했고 현재도 뉴코아에서 일하는 한 친구와 당시 파업투쟁에 참여했다가 퇴직하고

파전집을 하는 분 가게에 갔었습니다.

 

두 사람은 2007년 파업투쟁을 떠올리며 정말 서럽게 울었습니다.

우리 정말 열심히 싸웠는데... 라며...

 

영화를 보는 내내 아직도 뉴코아에서 감정노동을 하는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저 투쟁의 주인공이기도 했지만 진상고객때문에 한숨과 눈물을 밤새 흘렸던 그 친구의 모습이

영화 속에 나오는 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에 있습니다.

어제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에 들어갔고 코오롱 노동자들은 10년째 정리해고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10대 청소년들도 사회빈곤 속에 노동현장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동의 현장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은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이런 노동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연대>입니다.

고객이 아니라 나 또한 한사람의 노동자로 저 노동자들이 밀고 있는 카트를 함께 밀어야 하지 않을까요.

 

 

※ 상영관에 들어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관객의 90%는 젊은 여성이더군요.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선희의 아들 태영이가 아이돌 가수라는 것을.

잠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팬들이 영화의 흐름을 깨면... 정말 짜증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영화시작하고 처음으로 태영이가 나올 때만 작게 탄성을 지르더니 그 이후는 영화에 몰입해서 저 또한 좋은 관람시간이 되었습니다.

클라우드 편딩으로 좋은 영화가 개봉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고 예의도 잘 지켜주신 팬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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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북에 링크되어 있는 단편에니메이션을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무표정한 사람들.

기계적 행동들.

무기력.

 

그리고 반전.

 

 

 

 

 

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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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 약속이 있어 사무실에 나온 김에 영화나 한편 볼까 하고 

눈여겨 보아두었던 "노예12년"을 예약했습니다.

자유인이었던 한 사람이 납치되어 12년동안 노예로 살았다는 솔로몬 노섭의 실화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에 

재미보다는 그저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노예로서 이미 오랜 세월을 지낸 솔로몬 노섭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하는 장면부터 출발합니다.


노예로 지낸 그 몇년의 시간, 

이미 그는 자유인이었던 아득한 옛날을 추억할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최근 발생한 염전노예사건이나 아프리카 노예노동 사건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 사건이 있었던 당시 미국은 북부지방에서 산업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자유 노동자"가 필요했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북부에서는 노예를 해방하고 

여전히 노동집약적 농장경영 위주였습니다.

그렇기에 남부에서는 흑인을 해방하자는 것이 생산과 직결된 문제였고, 결사적으로 노예해방을 반대하게 됩니다.


즉, 북부가 인도적이고 남부가 비인도적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우선 이 영화에서 솔로몬 노섭이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유인이었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예술가였고 부유한 백인들과 어울릴 만큼 사회적 신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상점에 들어가 비싼 가방을 살 때 마주친 흑인 노예를 보는 그는 피부가 검은 백인일 뿐입니다.

같은 흑인으로서 어떤 고통이나 갈등이나 동정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심지어 노예로 팔려간 곳에서도 그는 지적이고 재능있는 자였기에 다른 노예들과 다릅니다.

같이 팔려온 흑인여성이 떨어진 아이들을 생각하며 울때 짜증을 냅니다.

나도 아이들이 그립다고 말하죠.


그러나 솔로몬 노섭이 그리워하는 아이들과 

흑인 여성이 애끓는 심정으로 그리워하는 아이들은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솔로몬 노섭이 없더라도 그의 아이들은 자유인이고 요리실력이 뛰어난 어머니가 있고

도움을 받을 백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흑인여성의 아들은 또 다른 집에 노예로 팔려갔고

딸은 매춘부가 될 것입니다.


이 둘의 아픔과 절망이 같을 수가 없고, 노섭은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자유인 솔로몬 노섭과 부인, 딸과 아들.



두번째 주인에게 팔려가고 노섭은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목화밭에서 일하다 쓰러져 죽은 흑인노예를 위한 영가를 부를 때

노섭은 자신이 흑인이고 그 노예들과 같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 다음부터 그에게는 다른 흑인노예들의 아픔이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영화 마지막에 솔로몬 노섭의 이후 삶에 대해 간단한 설명이 나옵니다.

다시 자유인이 된 노섭은 노예상인과 노예주들을 상대로 고소를 하지만 패소합니다.

그리고 그는 흑인노예인권을 위해 강연을 다니고 "노예12년"이란 책을 냅니다.

그리고 탈출하는 노예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하다가 실종됩니다. 

자유인으로 돌아가도 그에게 12년의 경험은 흑인들과 질긴 연대의식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런지요.


▲ 개인적으로 제가 보면서 많이 울었던 장면입니다. 자유인임을 증명하고 떠나는 노섭, 그러나 뒤에 남겨지는 노예들.





다음은 노예주들의 모습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 착한 주인과 못된 주인

둘 다 결국은 노예주였다는 것이죠.


솔로몬 노섭을 산 첫 노예주는 아이들과 떨어질 수 없어 울부짓는 흑인노예를 보고 그 딸까지 사려 하는 인간성을 보이지만 결국은 포기합니다.

농장으로 노예들을 데리고 와서 계속 우는 흑인 여성에게 동정도 표하고 "오늘은 편히 쉬고 먹을 것도 먹으라"며 위로도 보냅니다. 그러나 흑인여성이 며칠동안 내내 흐느끼자 결국은 "안되겠다"고 하고 그 여성은 어디론가 끌려갑니다. 

(아마 다른 곳에 팔렸겠죠)



▲노섭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하는 주인. 그러나 그 또한 노섭에게 결코 자유는 주지 않습니다.



▲ 노섭에게 노예신분임을 철저하게 알려주는 악덕한 주인. 



백인들은 압니다. 노섭이 자유인이었고 꽤나 지적인 사람이란 것을.

그러나 아무도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지 않습니다. 

납치한 자유인을 노예로 팔고 사는 범죄행위에 대해 모두들 입을 다물고 모른척합니다. 

자상하고 자신을 아끼는 주인의 은총으로 자유인으로 돌아갈 꿈을 꾸던 노섭은 

결국 주인의 빚때문에 더 악독한 주인에게 팔려갑니다. 

착한 주인은 "너를 살리기 위한 결정이다"고 하지요.


악독한 주인 밑에서 노섭은 비로소 자신이 처해진 상황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는 더이상 지성을 갖춘 자유인, 백인들과 고급식당에서 담소를 나누는 신분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같은 처지에 놓인 주변 흑인들을 보게 됩니다. 


어설픈 위선과 동정이 오히려 현실을 부정하게 하는 반면, 

잔인한 현실은 우리에게 분노와 실천을 끌어냅니다.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백인들은 잔인합니다.

흑인들에게 박수를 치라고 하고는 도망가면 잡아 죽일 것이란 끔직한 노래를 박자에 맞춰 신명나게 불러댑니다.

심지어 맘에 들지 않는 흑인을 괴롭히기 위해 다른 흑인들을 이용합니다.


이 잔인한 백인들 속에서 노섭은 실낱같은 희망을 주는 두 사람을 만납니다.


한 사람은 농장에서 노예들을 감독하던 사람인데 주정뱅이가 되어 흑인들과 같이 노동을 하는 백인입니다.

그 사람은 말합니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감독관이 되었는데 그게 얼마나 괴로운줄 아냐,

사람에게 채찍질하고 못된 짓을 하고 나면 맨 정신으로 있을 수 없어 술을 마셨고 그래서 이모양 이 꼬라지가 되었다....

그 하소연을 들은 노섭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받은 전재산을 그에게 주고는 

워싱턴의 집에 편지를 보내달라고 사정합니다.



▲ 주인마님의 종이를 훔치고 과일즙을 달여 만든 잉크와 나무가지를 다듬은 펜으로 편지를 쓰는 노섭


그러나 그는 주인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치고 노섭은 한밤중에 목에 칼을 대는 주인에게 겨우겨우 변명을 하고 살아남습니다. 


아무런 희망없이 살아가고 있는 그 앞에 어느날 또다른 백인이 희망으로 나타납니다.

캐나다인으로 노예제를 반대하는 사람.






그러나 노섭은 뼈저린 경험이 있기에 이 사람에게 자신의 처지를 쉽게 털어놓지 않습니다.

그러다 기회를 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노섭.

노예제를 반대하는 이 백인은 쉽게 도와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두렵다고 이야기하며 조금 망설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 백인이 집으로 연락해 준 덕분에 노섭은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동정과 양심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변화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대결하는 것이기에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감독관이었던 사람은 흑인들을 학대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구조와 맞설 용기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늘 자신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바로 이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노섭에게 구원의 손길을 준 캐나다인은 노예제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깟 편지한장 전해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망설이기도 했지만

신념에 의해 그 편지를 전해줍니다.



......


이 영화는 흑인노예들의 비참함을 다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솔로몬 노섭이 쓴 "노예12년"이란 책을 보면 영화보다 더 끔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간 흑인노예를 다룬 수 많은 작품에서 노예들의 비참한 삶을 충분히(?) 다뤘기에 오히려 이 영화는 노예들의 또 다른 삶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사실 어릴 적에 본 쿤타킨테나 톰아저씨의 오두막... 같은 작품을 보면 악마같은 남부의 노예주들이 보여주는 잔인함이 더 적나라 하지요.


그런데... 어느날 TV에서 미국의 남북전쟁을 다룬 드라마를 보고 충격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북부 공장주의 아들과 남부 농장주의 아들은 매우 친한 친구였는데 남부 농장주의 아들은 노예제도를 비난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북부 공장주의 아들인 친구네 공장에 가서 해방된 노예들의 삶을 보게 되지요.

그리고 분노합니다.

이것이 네가 말하던 자유냐! 우리 농장의 노예들도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다!

고 외칩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이 대사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남부는 나쁘고 북부는 착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게 했던 대사였고 그 이후 미국의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전쟁이 아니라 공업화된 북부와 농업위주 남부의 치열한 생존전쟁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굳이 노예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당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상을 보려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오늘 이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당시 흑인노예와 다른 자유인일까.


채찍질을 당하고 탈출하면 죽을 수도 있는 노예와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피곤한 몸을 일으켜 "임금"을 받기 위해 출근해서 온갖 인격적 모독을 당하면서도 일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삶. 아르바이트 여학생을 성폭행 한 사업주의 이야기, 아파도 억지로 출근했다가 죽은 노동자의 이야기, 일이 있어 연차를 신청했더니 해고당한 노동자의 이야기,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웠더니 천문학적 손배를 안겨 자살한 노동자의 이야기....


과연 우리는 자유인인가....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끔 이런 하소연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나를 해고시키다니! 이렇게 비인간적일 수 있냐... 착한 노예주에게 자유를 갈구하는 노섭과 같은 것이죠...


또 우리는 가끔 훌륭한 정치인이 나타나 비참한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등 서민들의 삶을 바꿔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런 기대는 새누리당에게 은총을 구걸하거나 민주당이 우리편이 아닐까 믿곤 합니다.

그렇지만 가진자들이 가진 양심과 동정은 그만큼. 결코 사회의 구조를 바꾸지는 못하지요...


박정희도 농민들과 마주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고생하는 노동자를 보고 손을 잡아 주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전태일이 요구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끝까지 무시하죠.




북부에서 찾아온 백인친구에 의해 구출되는 노섭은 떠나기 전에 죽고싶을 만큼 괴로운 처지에 놓인 팻시를 꼭 안아줍니다. 노섭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습니다.

노섭이 떠나고 나면 그나마 기대어 울 사람도 사라진 팻시는 워싱턴으로 떠나는 노섭의 뒤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노섭은 자유를 찾았지만, 수많은 노예들은 여전히 그렇게 맞고, 성폭행당하고, 죽어가는 거지요...


그러나 그 비참한 삶을 잊지 않은 노섭의 투쟁은 그때부터 시작합니다. 

흔히 흑인인권운동하면 마틴루터킹 목사를 떠올리지만 저는 이런 수많은 노섭과 같은 이들의 투쟁이 만들어낸 역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흑인노예이면서 백인처럼 살고 있는 거짓된 의식을 벗어버리고 현실을 직면한다면 오늘 우리가 바로 우리자신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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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예 12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4.15 05:20

    노예 12년 상

또하나의 약속이 개봉한지 한달이 다 되어 갑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응원과 참여 속에 개봉할 수 잇었고,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만만찮은 관객수를 보이고 있죠.


며칠 후 3월 6일에는 또 다른 삼성의 진실을 다룬 영화 

"탐욕의 제국"이 개봉합니다.



또하나의 약속은 극영화로 좀더 재미있고 편하게 볼 수 있다면

탐욕의 제국은 그야말로 다큐멘터리입니다.


포스터만 봐도...

또하나의 약속이 아버지와 딸의 모습을 담아 조금은 따뜻한 느낌이라면

하얀 방진복으로 가리워진 노동자들의 모습과 그 뒤의 거대한 빌딩...

왠지 삭망하고 두려운 느낌이죠?


막상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이 사진이 더욱 두렵게 느껴깁니다.



삼성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육성 외에 다른 이야기가 없습니다.


장면 하나하나도 그냥 현실을 찍었을 뿐 

조금의 가공도 없습니다.

희미하게 ... 멀리서 찍은 삼성 기흥공장의 모습,

그곳 기숙사의 모습


그리고 그곳에서 일했던 이들...

혹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육성만으로 이루어진 이 다큐는 

조금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또하나의 약속과 같은 재미.. 감동을 기대하시지는 마세요.

얼마전 삼성의 홍보부장이신 분이 또하나의 약속에 대한 비난글(?)을 올렸습니다.


          * 해당글 보기 => 영화가 만들어 낸 오해가 안타깝습니다


이 글에 대해 예전 삼성에 다녔다는 한 분이 반박글을 써서 인터넷에 회자되었지요.


        * 반박글 보기 => 제가 한 때 속했던 이 회사가 전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삼성측의 논조는 영화는 가공이 많았고 "잘은 모르지만" 삼성은 그렇게 나쁜 회사가 아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또하나의 약속은 영화라 그렇다 칩시다. (제가 알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또하나의 약속은 거의 사실과 다름없는 영화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탐욕의 제국에 대해서 삼성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요.



역사의 사(史)자는 깃발을 든 사람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즉 기록이란... 이긴자의 몫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삼성은 지금 가지고 있는 자본의 힘과 권력으로 사실을 가리고 기록을 바꿀 수는 있으나 진실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일부만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시절은 아니니까요.



또하나의 약속을 보고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고 괴로와 했습니다.

너무나 잔인한 현실의 이야기 앞에서 

차라리 외면하고 몰랐으면 하는 사실을 직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봉될 영화 탐욕의 제국은 아마도 또하나의 약속보다 더 괴로울 것입니다. 

지루하기조차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외면하면 영원히 지속될 문제이기에 지금 괴롭고 힘들더라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봐야 할 상처입니다.


또하나의 약속만큼 많은 분들이 관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영화 보는 내내 참 무거웠는데 그나마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것은 황상기 아버님 말투, 목소리와 박철민 배우가 어찌나 똑같던지... 


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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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 하루 일을 하고
그에 대한 댓가로 '임금'을 받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살아가기 힘듦을 넘어 이제는
죽음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마철에 일이 없어 돈을 벌 수 없자 자살한 한 일용노동자의 사연,
난방비를 아끼려 가스버너를 틀다 사고가 나 사망한 한 장애인 가족의 사연,
그리고 뛰어난 재능은 있으나 그의 예술적 재능이 '돈'이 되지 못한 까닭에 쓸쓸히
자취방에서 죽어간 젊은 작가의 이야기는
이제 우리 삶에서 '돈'이란 단순한 교환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 타임'이란 영화는 그렇게 우리 삶을 지배하는 '돈'을 '시간'으로 바꾸면서
적나라하게 자본주의의 잔인한 단면을 고발하는 영화입니다.

25세가 되면 유전자 조작으로 사람의 노화는 중단됩니다.
가장 부려먹기 좋은 노동력을 가진 존재로 영원히 남습니다.
그리고 멈춰진 시간이 움직입니다.
시간은 살아가는 동안에도 계속 줄어들고
밥과 커피를 먹기 위해서도, 차를 타기 위해서도, 물건을 사기 위해서도
계속 시간을 소비해야 합니다.

갑부의 딸은 그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거울을 보며 '평생 이 모습으로 살겠구나' 생각하지만
노동자인 청년은 줄어들기 시작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닥치는대로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청년은
너무나 오래 살아 이제는 죽고 싶은 한 갑부를 만나 그에게 진실을 듣게 되고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시간을 독점하는 사회와 싸우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러나 소수가 영원히 살기 위해 시간을 빼앗는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소득 몇만불 시대라고 하며 살기 좋아졌다고 하는데
과연 여러분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습니까.

정말 박정희 때문에 경제가 좋아지고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시절,
노동자의 한달 월급이 얼마였습니까.

진정 민중이 잘 살게 된 것은
87년 6월 항쟁을 거쳐 7,8,9 노동자 대투쟁으로
부를 분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임금은 그대로이고 물가는 계속 치솟는 이유는
소수가 더 많이 독점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김연아가 큰 돈을 벌어오고
유명한 과학자가 특허를 내어 엄청난 수익을 가져오고
삼성이 잘 나가 애플을 이기며 세계 1위를 한다해도
그 돈은 우리에게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 

대기업이 잘되면 우리에게도 어떤 혜택이 있을 것이란 최면을 걸고
오히려 서민들의 얄팍한 주머니를 탈탈 털어내려는 것이
지금 이명박식 경제이며
한미FTA의 본질입니다.


내가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까하는
이기적 욕심을 버리고
이미 충분한 사회적 부를
분배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떄입니다.

* 관련 리뷰 : 시간과 노동에 관한 일차함수


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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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닥친 미국의 경제위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도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고 있다.
누군가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감기를 앓는다."고 했듯,
우리의 경제는 미국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더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할 것은 미국의 경제위기는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체제로 인한 필연적 결과이며
그 자체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에
극복이 되기보다는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씨 911', '식코'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는
이러한 미국사회 경제 위기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고찰을 하며 자본주의가 최고의 가치일 수 없다는,
오히려 올바른 가치를 훼손하는 사회 악이라는 고발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고발한 현재 미국사회 자본주의 폐해는
모기지론 붕괴로 인해 집에서 쫒겨나는 사람들과
공적자본이 투입되고 자신들끼리는 성과급을 챙기면서 실제로
노동자들은 해고하고 억압하는 현실이다.

사실, 미국이란 나라가 천박한 자본주의의 전형이라고 하지만
그나마 우리사회보다는 낫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고용한 노동자 명의로 생명보험을 들고
그 노동자가 죽으면 보험 수급자를 회사로 정해 놓는
정말 어이없게 비인간적인 그들 자본의 행태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사람이 돈에 미치면,
사람의 존재를 보지 못하게 된다.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약간 부족한 자본을 채우기 위해
합법을 가장한 강도질을 서민을 대상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물론 미국사회에서 자라고 미국적 가치관을 가진 마이클 무어 감독이기에
이 영화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미국사회 안으로 국한되어 있다.
전의 작품인 화씨 911을 본다면,
마이클 무어 감독이 국제감각이 없지는 않을 터인데
루즈벨트를 묘사한 장면을 정말 보기 껄끄러웠다.

아직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은 한 사회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미국 사회가 붕괴되는 자국을 지키기 위해 약소국에 행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인, 너는 미국인이란 관점을 넘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성이 파괴되고
도덕적 가치가 붕괴되는 현실은 우리들이 똑같이 겪는 현실적 문제엿다.

모기지론 붕괴로 집을 잃고 떠나는 한 아저씨가
테러를 하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분을 삭이는 모습 속에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정부의 공적 자금을 받아 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
한편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수만명을 해고시킬 수 있다는 장면에서는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을 비롯한
수많은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진실은
이미 미국사회를 붕괴시킨 자본의 오만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악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만한 이 땅의 재벌들이
바로 미국의 재벌들에게 수법을 배워왔구나 싶은....


마이클 무어는 말한다.
우리의 최고 가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라고.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다.
경제적 이득만 따진다면 왜 민주주의를 하냐, 독재가 더 경제적이다.
라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려야 하는 수 많은 권리 중에
경제의 문제는 한 부분이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이에 가장 기초적이기는 하지만
경제적 문제가 모든 것을 지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회가 발전할 수록 가치는 도덕과 정치적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한국경제가 안전한가?

지금 한국의 자본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민중들이 선택할 길이 무엇인지
오히려 나는
오만하게 돈과 권력의 향기에 취해 있는 그들에게
이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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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양비정규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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